히든피크

글보기
제목WHAT IS LIFE?(생명이란 무엇인가)2012-01-20 12:00
작성자

 

20세기 전반 양자물리학의 창시자중 한사람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에르빈 슈레딩거(1889-1961)는 뜻밖에도 생명과 정신의 문제에 관하여

과감히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책(WHAT IS LIFE? 1944)을 저술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이 물리학자의 입장이면서도 생명에 대한 기계론Mechanism의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화학이론에 따르면 자연의 모든 화학작용은 상당히 빈번하게 오류를 나타내는데

유전자의 화학적 복제는 어떻게 그토록 높은 충실도로 실행될 수 있는가?

슈레딩거가 이런 의문을 제기한 때는 유전자를 충실하게 복제하는 물질의 화학적 실체가

DNA 이중나선구조라는 사실이 제임스 왓슨과 프란시스 크릭에 의해 알려지기(1953년)

10년 전이었다.

 

그의 질문은 어떤 유전자가 복제되어 새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무작위적인 오류가

상당수 일어날 것이며,따라서 완벽한 복제가 불가능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복제가 일어날 때마다 유전자에 매번 변화가 생긴다면 種의 안정성 유지가 어렵게 될

것이라는 그의 파라독스는 당시의 생물학자들 누구도 대답하기 어려운 숙제였다.

 

그 놀랄만한 비밀은 훗날 DNA 복구 시스템에 의해 밝혀진다.슈레딩거의 예상과 같이

DNA 복제의 화학적 과정에는 실제로 빈번한 실수가 발생하나 이러한 실수를

즉각적으로 인식하고 수정하는 이차적 화학절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오류는

크게 줄어 용인할 만한 수준이 된다는 것이다.

 

슈레딩거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떠오르는 생각은 유명한 “슈레딩거의 고양이”일 것이다.

양자물리학 초창기에 미시세계의 입자는 당구공처럼 생긴 단단한 물체가 아니라

수면위의 물결이나 음파같은 파동의 성질을 가진다는 것이 밝혀졌다.(드브로이의 정리) 

물질이면서 파동이 가지는 물리적 의미를 간결하고 우아한 수학방정식으로 표현한

슈레딩거의 “파동 방정식”은 양자역학의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고 그에게는

노벨상의 영광(1933)을 안겨 주었다.

 

어느 글에서 본 기억인데 물리학 역사상 가장 우아한 방정식을 순위로 매기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의 방정식(물질,공간,중력의 상관관계)이 단연 금메달

감이고,다음으로 클라크 맥스웰의 전자기방정식(전기와 자기의 상호작용)이 은메달,

슈레딩거의 파동방정식을 동메달로 꼽았다.

 

물리방정식이 우아하다는 것은 간결하면서 보다 많은 사실을 알려주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으로 理致상 그렇지 않을 수 없는 어떤 필연성inevitability을 내포한다는 의미이다.   

 

다른 한편에서 닐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로 대표되는 물리학자들(코펜하겐 학파라 한다)은

불확정성의 원리에 입각하여 슈레딩거의 관점(뉴턴이래 아인슈타인으로 계승되는

고전적 관점으로 원인과 결과 사이에는 반드시 합당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인과론적 결정론)과는

배치되는 소위 코펜하겐 해석(원인과 결과 사이는 우연적인 요인이 지배한다는 비결정론으로

관측자의 관측 행위가 있어야 비로소 관측대상의 물리적 상태가 결정된다.

이것을 개연적 인과관계 probabilistic casuality라 부른다)을 들고 나온다.

 

코펜하겐 해석을 도저히 수긍할 수 없었던 슈레딩거는 비결정론이 불완전한 이론임을

드러내고자 사고실험(실제의 실험장비없이 생각만으로 하는 실험)을 고안하는데,

이것이 슈레딩거의 고양이다.

 

간단히 소개하면, 상자속에 고양이가 있고 독가스가 뿜어 나올 확률과 안 나올 확률이

각각 반반이라고 하면 임의의 시간에 상자속의 고양이 죽어 있나 살아 있나 하는

질문으로 결정론의 입장에서 보면 상자를 열어 보지 않더라도 당연히 절반의 확률로

이미 죽어 있든지 살아 있든지 할 것이나,코펜하겐 해석은 기이하게도 상자를 열어

관측을 하기전 까지 고양이는 살아 있는 상태와 죽어 있는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가

상자를 여는 순간 어느 하나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거야 말로 넌센스가 아니냐는 게

슈레딩거가 의도한 메시지였다.

 

전하는 말로 이 소식을 듣고 아인슈타인이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당시 아인슈타인은 보어와 양자물리학의 비결정론을 두고 거의 사활을 걸다시피 논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수세에 몰리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이 실험은(실제로는 위 실험에서 수많은 입자로 구성된 거시물체인 고양이는 입자들의

양자적 효과가 상호 상쇄되어 죽어 있거나 살아 있거나 결정되어 있지만 고양이가 아니고,

양자효과의 통제가 가능한 소수의 입자라면 사고실험은 의미가 있다) 오늘날 까지도

논란이 되는 철학적 문제로 결정론의 좌장인 아인슈타인과 비결정론의 좌장 닐스 보어간

치열한 논쟁의 주제였다.

 

근래의 정교한 실험에 따르면 보어의 판정승,따라서 자연은 근본적인 수준에서

우연이 지배하는 비결정론적이라는 쪽으로 기울었다.

 

다시 이글의 주제인 생명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돌아 가서, 시대에 따라 

문화에 따라 생명에 대한 정의는 조금씩 달라져 왔다. 현대적 의미에서는 대체로

다음 세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생명이라 할 수 있다.

 

첫째는 물리적 공간을 차지하는 몸체가 있어야 한다.그 크기는 코끼리처럼 거대하거나

박테리아같이 작을 수 있으나,물리적 실체가 없는 유령은 생명이 아니다.

 

두 번째는 외부와 정보를 교환하여야 한다.공기중에서 산소를 받아 들여 영양소를

연소시킨 에너지를 이용하거나 그 과정에서 생기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

그리고 음식물을 섭취하여 영양분을 흡수하고 찌꺼기는 외부로 배설하는 행위,

그리고 먹이감을 포착하거나 포식자를 회피하는 행위 역시 외부와의 정보교환이다.

 

마지막으로 생명은 자신을 닮은 후손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 방법은

다양한데 박테리아처럼 자신이 둘로 나누어 지는 방법으로 번식하는 무성생식이 있고,

동식물처럼 암수로 나뉜 개체가 생식세포의 수정을 통해 자손을 만드는 유성생식이 있다.

 

그러면 사전적인 의미로 "살아 숨쉬는 힘"을 가진 생명의 기원은 무엇일까?

오랜 옛날부터 인류는 자신과 생물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행위의 주체로서

보이지 않는 어떤 정신spirit을 상상하였다.서양에서 철학, 과학등 모든 학문의 

아버지격인 아리스토텔레스(BC384-322)도 육신에는 생명과 사고를 부여하는 

힘(생기력,영혼)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기독교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모든 생명은 신의 창조물이고,영혼은 불멸하다는

이론을 기본 교리로 삼았는데,아마도 기독교 신앙의 오랜 성공은 영혼불멸성에 

원인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창조론에 관해서는 영국 교회 부주교이던 윌리엄 페일리의 논증이 가장 유명하다.

페일리는 자신의 저서에서 황야를 건너다가 돌멩이 하나와 시계 하나를 발견하는

이야기를 예시한다.

 

돌멩이는 단순한 자연의 일부로 간주되겠지만,시계는 시간을 알려줄 목적으로

만들어진 인공물이라는 데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눈과 같은 자연의 사물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것이 의도적으로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고 페일리는 단언하였다.

 

한편 찰스 다윈(1809-1882)은 22세인 1831년부터 5년 동안 탐사선을 타고 세계 각지를

항해하였다. 그는 오지에서 원시상태의 미개인을 목격하며 인간의 조상은 동물일

것이라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생명체의 다양함과 풍부함,인간과 동물의 유사함,그리고 광대한 시간 스케일,

이 세가지에서 그는 진화론의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다윈의 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조상은 동물 뿐 만이 아니라, 그 동물의 조상,또 그의

조상으로 연속해서 추적해 갈 수 있는데, 종국에는 태고적 미생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그 최초의 미생물은 어떻게 해서 생겼을까?

과학이론은 원시지구에서 적어도 한번 또는 그  이상의 자발적인 창조-유기물질의 스프에서

원시 미생물이 발생하는 사건-가 있었다고 추정한다.

 

생명현상에 비물질적인 초월적 존재가 있다고 믿는 생기론Vitalism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뿐 아니라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봉하는 생명이론이다.

이는 생명체의 현상은 물리화학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창조론이나

죽은 후에도 영혼이 존재한다는 믿음도 여기에 포함된다.사후세계를 믿는 이들을  

생기론자Vitalist라 부른다.

 

생물학의 신비가 물리학과 화학의 원리에 의해 하나 둘씩 완벽하게 설명되었지만

현대의 생물학에서도 아직 불가사의로 남아 있는 큰 부분이 뇌의 작용에 대한 메커니즘,

즉 사고와 의식의 본질이라고 한다.뇌의 작용이 사고나 의식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생기론자들이 기계론자를 논박하기 좋은 구실이

되기도 한다. 

 

오늘날에는 영혼과 육체,정신과 물질의 개별성(이원성)을 당연히 여기지만,

이를 분명하게 구분하게 된 것은 17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르네 데카르트

(1596-1650)에 의해서다. 

 

데카르트는 인간을 포함하는 동물을 복잡한 기계라고 보았다.그러나 종교재판이

두려웠던(갈릴레이의 종교재판을 목격하였으니) 그는 그 기계를 신이 설계하였다는

말을 덧붙였다.그러자면 물질적 육체와 영혼을 화해시키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는 정신과 육체의 개별성을 인정하는 이원론duality을 내세우고 뇌의 송과선이

바로 영혼과 뇌가 상호작용하는 장소라고 추측했다.      

 

철학사적 관점에서, 그가  최초로 근대적 자아를 인식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고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를 근대철학의 출발로 보는 바,

합리적 이성주의를 표방하며 과학시대의 사상적 밑바탕이 된 근대철학은 데카르트에서

시작하여 칸트를 거쳐 헤겔에서 끝나고, 헤겔 이후의 철학사조는 통상

현대철학으로 간주된다.

 

수학분야에서도 데카르트는 큰 업적을 남겼다.그는 방정식을 좌표계에서 그래프로

표현하는 방법(해석기하학)을 고안하였는데 이 방법은 뉴턴과 그의 후계자들이 

물리학에서 널리 응용하였다.   

 

오랜 전통을 가진 생기론에 비하여 생명체를 기계로 간주하는 기계론의 역사는 짧다.

데카르트시대 부터 시작하였으나, 현대적인 생물학으로 인간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확립시킨 것은 불과 지난 60년 간(DNA 발견이후)의 업적일 것이다.

생물학은 20세기 전반에 크게 발달 하였던 물리학과 화학의 지식을 바탕으로 복잡한 분자구조 및

생명시스템의 기능을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밝일 수 있게 되었다.   

 

기계론(현대생물학)의 기본 원칙은 살아 있는 생명체는 언제 어디서나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물리학과 화학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므로, 생명시스템은 초인적 기적이나 신의 개입과

같은 요인에 의해서 과학의 원리를 초월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생명에 대한 오랜 논쟁의 한 축인 생기론Vitalism은 창조론 또는 유심론으로 이어 지고,

다른 한 축인 기계론Mechanism은 자연히 진화론과 유물론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
이전대칭성 이야기2012-01-25
다음새내기 인사드립니다2012-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