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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사람이 되어가네.2012-08-15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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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봤던 영화 <마더 워터; マザ-ウォ-タ-; Mother Water>에서 할머니가 아기의 얼굴을 한참을 들여다보며 아기의 아버지와 이런 대사를 주고받습니다. 

A: 자나 보네.

B: 네.

A: 또 얼굴이 변했구먼.

B: 예? 그래요?

A: 응, 변했어.

B: 그런가?

A: 이제 점점 사람 얼굴이 되어가네.

B: 사람 얼굴이요?

A: 아기에서 사람 얼굴처럼 변하는 거지.

B: 음..

A: 저기 눈 주위나 그런 데가 형태가 살아나잖아.

B: 아~



사실 딱히 별다른 의미가 있어 보인 장면과 대사는 아니었는데, 기억에 남더라고요. '이제 점점 사람 얼굴이 되어가네.' 라는 대사 말입니다. 우선 말 그대로 시간이 점차 지날수록 아기의 생김새나 이목구비가 점점 뚜렷해진다는 의미가 있겠고요. 더 나아가선 사람이 하나의 존재로서 사람다운 모습으로 갖추어간다는 제 자의적인 해석을 덧붙여 볼 수 있겠습니다. 


이제 부여해본 의미를 지금의 제가 가장 중요시 여기고 있는 바와 맞닿아 있는,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의 말과 한번 이어서 확장시켜보고자 합니다. 몽테뉴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자신의 두 발로 설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것’이라고 했는데요. 여기서 자신의 두 발로 서는 것은 바로 ‘자립’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자립이란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해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모두 다 아실 겁니다. 저는 이에 더하여 자립은 단순히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는 경제적인 면을 넘어서 자유, 자존감, 자신감 등 개인의 기본적인 존엄성과 관련되어 있고 또, 삶에서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사람은 혼자만의 자립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만일 그렇게 된다한들 아무런 의미도 없겠지요. 왜냐면 사람은 타인과 관계 맺음 속에서 살아가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자립은 '홀로 살아감'으로 보는 것보다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것’, 즉 그 무엇이 됐든 간에 외부의 것에 대해 의존적인 관계에서 독립적인 관계로 살아가는 삶의 한 양식과 같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처음 한자를 접할 때, ‘사람 인; 人’ 자는 옆에서 본 ‘사람’을 본 뜬 상형 문자라고 배웠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사람간의 관계가 이 ‘人’의 모양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일단 두 획을 각각 한 사람으로 봅니다. 그럼 이는 마치 마주 기대고 있는 두 명의 사람처럼 보이죠. 그리고 그 둘은 각자 서로의 중심이 잘 잡혀있어 곧게 선 상태여야 합니다. 무언가에 걸쳐있지 않으면서도 혼자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를 받쳐낼 수 있는 중심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는 각각 스스로가 자유로울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태여야만 모두 균형이 무너지지 않고 몸을 상대에게 편하게 비스듬히 맡길 수 있을 테니까요. 


지극히 제 개인적 특징입니다만, 어려서부터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단짝이나 우정을 운운하는 것에 대해 꽤나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하며 컸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대개는 단짝이네, 우정이네 마네하는 미명 아래에 만들어가는 부담스런 사람 관계라고 보고 탐탁지 않게 여겼기 때문이에요. 또 솔직히 누군가가 제게 정도가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도, 제가 누군가에게 과하게 의존하여 거치적거리는 존재가 되기도 싫었다는 이유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제가 제 인생에서 타인에게 너무 의존하는 사람, 다시 말해서 혼자 설 수 있는 경험없이 성장하게 된다면 나중에 ‘헐렁한 사람’이 되기가 쉽다고 여겼기에 나온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혼자 서야만할 때, 두 발로 오롯하게 서질 못하거나 아예 서는 방법 자체를 모르게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자립을 피해 끊임없이 타인에게 의존하고, 상황에서 도망가는 여지를 자신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주게 된다고 봅니다. 결국엔 아주 피곤한 존재로 전락하게 될 거고요.
  

저라는 사람은 제 두 발로 온전히 설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혼자 설 수 있는, 그 방법을 아는 인간적인 기본기가 탄탄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당연히 그 수가 많지 않아도 좋고요.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 그 자체만으로 힘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버텨주는 것이지요. 제가 점점 더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가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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