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제목음양의 조화라더니...2012-06-11 16:00
작성자
첨부파일1329966291145.jpg (40.7KB)

음과 양은 늘 조화를 이룬다고 하더니...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는 듯합니다.

 

늦은 아침, 학교를 가는 길이었습니다.

어젯밤에 비라도 온 것인지 땅은 습하게 젖어있더군요.

평소 후각적 자극에 예민한 저는

땅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물 비린내에 속이 역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조금 앞에서 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걸어오고 계시더군요.

할머니는 거동이 조금 불편하신 듯 보였습니다.

그 옆에서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부축하며 걷고 계셨고요.

옆을 스쳐가며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얼굴을 살피니

할아버지께서는 할머니께 무어라고 귀엣말을 건네셨고,

할머니는 피식 웃으시며 고개를 돌리셨고,

할아버지께서는 다시 개구진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지으셨습니다.

참으로 따뜻하고 다정해 보이는 모습이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그 할아버지의 연배가 되었을 때 꼭 저런 모습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짜증스레 걷던 제 얼굴에 미소를 채워주는 등교길이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조금 전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아침에 있었던 일이 생각나 피식피식 자꾸 웃음이 새는 것이

누가보면 꼭 미친사람처럼 보였을 겁니다.

 

그렇게 걷고 있는데 다소 몰골이 추레한 한 남자가 제 앞을 막으시더군요.

우선 앞부터 막고 말을 건네는 것에 상당한 불쾌감을 느꼈어요.

이내 귀에 꼽고 있던 이어폰을 빼내고서는 짜증스럽게 무슨 일인지를 물었습니다.

 

그 분은 지방에서 올라와서 그렇다며 길을 물으시더군요.

대답을 듣기 전에 이어 하시는 말씀이 사람들이 자신의 몰골이 추레한 것을 보고는

사람들이 대답을 잘 해주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하시더군요.

마음이 짠 해지는 것이 좀 전의 불쾌함이 죄송스러워졌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신세타령을 하시길래 말씀을 끊고 그래서 어디를 가시냐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미안한 표정으로 자신은 구걸을 하는 것이 아닌데 구걸을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면 마음이 아프고 속상하다고 하시더군요.

다시 마음이 짠 해져서 또 한참을 신세타령을 듣게 되었습니다.

듣다 보니 슬슬 짜증이 몰려오더군요.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이봐요, 그래서 본론이 뭐요? 할 말만 하세요."

 

"아니, 그러니까 ~ 제가 진짜 돈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자꾸 그렇게 보니까...."

 

"아아, 됐고요. 그러니까 본론이 뭐냐고요."

 

"제가 그러니까 길을 물어보는 것이 제가 지방에서 올라와서 그러다가 보니까 서울 지리를 잘 모르고 사실 제가 영화배우가 꿈인데 연기를 준비하는데 구걸하는 것이 아니고 연기력이 좋아야하는데 제 연기가 어떤지... 돈이 없으니 연기가...."

 

"아니!!! 그러니까 뭐요?!"

 

"만 오천원만 주세요."

 

"............................"

 

 

 

1329966291145.jpg

 

 

아놔......

그렇게 긴 시간동안 되도 않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것도 화가 나고,

저를 속인 것에도 화가 나고,

잠깐이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화가 나고,

무의식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딸랑 오백원 밖에 안 잡혀서 화가 나고,

아니 근데 만오천원이라니!!!

 

그 와중에도 혹시 몰래카메라인가? 실험카메라인가? 요딴 생각을 하면서

차마 화를 내지는 못하고 "됐어요."라고 말하고 다시 저의 갈 길을 가는데

몹시나 황당하더군요...

 

 

음따로 양따로 말고 그냥 음양 비벼 주세요.

 

 

 

댓글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
이전혹시2012-06-12
다음다들2012-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