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글보기
제목책을 보는 이유.2011-08-22 15:53
카테고리단상
작성자
첨부파일책장.jpg (98.9KB)택배1.jpg (43.9KB)택배2.jpg (46.2KB)

 안녕하세요, 김진영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서재를 갖는 꿈을 꿀 텐데요. 시중에 누구의 서재, 무슨 서재 하는 식의 책들도 많이 나와 있는 걸 보면 서재가 갖는 그 오묘한 매력은 분명 실재하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저만의 서재를 갖는 꿈을 늘 꾸고 있는데요. 그런데 제가 바라는 서재는 아찔한 햇살이 창을 통해 들어오며 고즈넉한 분위기를 내는 그런 근사한 서재가 아닙니다. 아주 음흉하면서도 음침한 분위기를 내는 그런 오묘한 서재이지요.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보면 나오는 그런 궁전들이 있잖아요. 거기서 촛대 같은 장식물을 건드리면 벽이 쫙 열리면서 나오는 미로를 통해야만 갈 수 있는 그런 밀실 속의 서재를 꿈꾸고 있지요. 정말이지 말 그대로 저만의 서재인 셈입니다. 여러 가지 세부사항도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제 서재에는 오직 선택받은 사람만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엄청난 비밀의식을 수행하듯이 책이 주는 흥분에 휩싸이는 시간을 갖는 겁니다. 그리고 서재에서 나오면 모두가 서재에 관한 비밀을 함구하는 거죠. 그리고 서재 밖에서 서재에 관해 말을 하는 사람은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가 되는 겁니다. 이미 서재를 만들기 위한 전문가로 건축을 전공하는 친구를 섭외해두었습니다. 훗, 이 친구는 자신의 운명을 알기는 할까요? 이 친구는 서재가 완성되는 순간 자신의 예술품과 하나가 되는 순장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헤헤.

 

 전자책 서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자책을 싫어하는 분도 많이 있으신데요. 예전에 소크라테스는 책에 대해 많이 우려를 했다고 합니다. 책이 사람들의 기억력과 사고력을 떨어뜨리고 대화를 없앨 것이라고요. 니콜라스 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소크라테스의 우려와 달리 책은 사람들의 사고력을 높여주었고, 인터넷의 사용이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게 만든다고 지적했는데요. 글쎄요, 분명 니콜라스 카가 지적한 신경가소성 문제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지만 전자책이나 인터넷에 대한 우려는 소크라테스의 책에 대한 우려처럼 기우일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소크라테스의 우려가 완전히 기우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책을 ‘읽다’를 ‘알다’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쉽게 아는 것은 분명 경계할 대상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책에는 그 단점마저 상쇄하는 장점이 충분하다고 판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전자책이나 인터넷도 생각해봤으면 좋겠네요. 진지하게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저는 평소에 인터넷도 잘 안하고, 전자책은커녕 그 흔한 MP3도 사용할 줄 모르는 최첨단을 역행하는 삶을 살고 있지요.

 

 

 

 

책장.jpg

 

 

 

 제 소박한 책장입니다. 꽂혀 있는 책이 많은 양이 아니라 공감이 어려우실수도 있겠지만 제게는 책을 사는 버릇이 있습니다. 좋은 책을 보면 자꾸만 사고 싶어집니다. 책을 사면 책속의 위대한 지성이 마치 제 것이 되는 것만 같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잘 때도 책장을 향해 머리를 두고 잡니다. 혹시나 책의 요정이 있어 제 머릿속으로 책의 기운을 전달해줄 때 그 동선을 조금이나마 줄여줄려고요. 그런데도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자꾸만 멍청해지는 저를 보며 마음이 아픕니다. 허영심에서 비롯된 책 구입으로 저는 점점 가난해지고 있지만, 책을 읽으며 위대한 지성을 발견하는 그 희열감 때문에 책을 사는 것을 그만두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택배2.jpg  택배1.jpg 

 

 

 

 얼마 전 다른 학생들과 함께 학생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꽤 높은 한 교수님과 점심밥을 먹게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사실 참석하고 싶지 않았는데요. 제가 평소에 제 이야기를 잘 안하는 편이라 그런지 아니면 정말로 그래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저들은 종종 제게 “생각 좀 하고 살아라.”, “책 좀 읽어라.”등의 충고를 아끼지 않거든요. 아무튼 달변가이신 교수님의 주도하에 이뤄진 대화는 밥집에서 밥을 먹는 것이 마치 엄청난 결례가 되는 것 같은 진풍경을 야기했는데요. 다들 마음의 양식으로 충분했었나봅니다. 허허. 한 육신의 양식이 더 고팠던 저만 오직 묵묵히 밥을 먹었는데요. 제법 뻔뻔하다고 자부하는 저지만 하마터면 체할 뻔한 민망한 시간이었습니다. 

 

 교수님이 취업이라는 화두를 꺼내시고 한 학생이 독서량과 연봉이 비례한다는 신문기사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취업과 관련된 독서로 흘러갔습니다. 학생들의 고민토로인지 자기자랑인지 헷갈리던 이야기가 끝나고, 교수님은 교수님이 담당하는 교수지도 독서토론세미나에 참가하라고 하시더군요. 그 세미나에서 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시면서요. 학생들은 참석을 다짐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며 정말 좋아들 하더군요. 그 모습에 교수님은 기분이 좋아지셨는지 학생들에게 밥보다 비싼 커피를 사주시겠다며 “가자!”를 외치셨고요. 그때 그 광경은 마치 제가 고등학교 때 즐겨보며 대학생활의 꿈을 키웠던 논스톱이라는 시트콤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허허. 수북이 남아있는 육신의 양식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교수님이 제 등을 한 대 치시며 말씀하시더군요. “그럼 진영이는 이만 가봐라.” 음, 저와는 하실 말씀이 없으셨던 걸까요? 아니면 어차피 대화가 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셨던 걸까요? 순간 ‘이건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라리 다행이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헤어지고는 도서관에 들러 육신의 양식에 마음의 양식까지 더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이래저래 시간을 보내다 문득 현민 양이 추천해준 김어준 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이 생각났습니다. 시계를 보니 시간이 딱 되었더군요. 그렇게 생전 처음 들어보는 라디오 방송에는 동균 군이 좋아하는 철학자 강신주 씨가 나왔습니다.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독서법을 알려달라는 청취자의 질문에 대한 김어준 씨와 강신주 씨의 대답을 정리하자면, ‘책 속에 돈 버는 법은 없다. 책을 제대로 읽으면 사람이 돈을 위해 살지 않고 사람답게 살려고 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성공은 할 수 없다. 대신 책을 많이 읽으면 멋지게는 살 수 있다. 책은 자신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세계를 아는 흥미진진함 속에서 읽는 것이다.’라고 하시더군요. 

 

 허허. 같은 날, 같은 질문에 대한 다른 방향의 이야기 전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세요? 여러분은 무슨 이유로 책을 보시나요? 문득 여러분의 서재가 궁금하네요. 충동적으로 구매한 책들을 보며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생활비 걱정에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이 순간에도 인터넷 서점으로 마우스 커서를 움직이려는 저를 보며 두려움을 느낍니다. 흑흑. 제게 책 좀 양보해주세요. 흥미진진함 속에서 멋지게 살고 싶습니다. 

 

 김진영이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댓글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