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진영입니다. 어제 술을 마셨습니다. 함께 술을 마시던 한 여자 분이 제게 그러시더군요. “예쁜 여자 좋아할 것 같아요.” 저는 찰나의 주저함 없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네! 예쁜 여자 정말 좋아요.” 하하. 남자 분들이라면 대부분 공감하실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70:30의 원리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판단할 때 성격을 70%를 보고 외모를 30%를 본다는 말인데요. 어때요, 공감하시나요? 여기서 성격은 좋으면 70점 나쁘면 69점, 외모는 좋으면 30점 나쁘면 0점이라네요. 결국 총점을 결정하는데 주요한 것은 외모입니다. 하지만 성격을 더 많이 보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저는 완전 공감하는데요. 어떠세요, 남자 분들? 가끔 강남이나 신촌 등의 번화가에 나가면 처음에는 눈이 참 즐겁습니다. 세상에 예쁜 여자가 이렇게나 많다니요. 이곳이 무릉도원인가 싶습니다. 이쯤에서 노래가사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그 안에 내거라곤 하나도 없다네~♪” 흑흑. 그런데 그렇게 예쁜 여자도 한 30분쯤 보고 있노라면 무덤덤해지기 시작합니다. 꽃도 홀로 핀 꽃에 눈길이 가지 꽃밭 속 하나하나의 꽃에 눈길이 가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같은 종류의 꽃이라뇨. ‘어? 방금 지나간 여자 아닌가?’, ‘저 사람들은 쌍둥인가?’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아마 옷 스타일도 비슷하고 화장법도 비슷하고 현대의학의 혜택도 비슷하게 입어서일까요? 그 문화적 몰개성에 곧 질려버립니다. 
- 대한민국 남자들의 평균 이상형이라네요? 우왕~ - 子夏問曰 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 何謂也 子曰 繪事後素 曰 禮後乎 子曰 起予者 商也 始可與言詩已矣 -「八佾」 자하가 공자께 질문했다. “‘아리따운 웃음과 예쁜 보조개, 아름다운 눈과 검은 눈동자, 흰 바탕으로 채색을 삼았도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뒤에 하는 것이지 않은가.” 자하가 말했다. “예는 뒤에 있는 것이로군요?” 공자가 말했다. “네가 나를 깨우치는구나! 더불어 시를 논할 수 있겠구나.”
『논어(論語)』 팔일(八佾)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번역도 해설도 이견이 있기는 합니다만, 이런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전체적인 핵심은 미의 형식과 내용에 관한 담론이지요. 여기서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말은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이후에 한다는 뜻으로, 본질이 우선하고 그 후에 꾸밈이 있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입니다. 미소와 보조개, 검은 눈동자 같은 미의 외적인 형식보다는 인간적인 바탕이 더 주요하고 참된 아름다움이라는 말입니다. 가령 우리의 동양화를 보면 여백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리고 그림이 완성된 후에야 이 여백의 중요함이 드러나지요. 이 여백을 즉 내면의 아름다움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외적인 꾸밈의 아름다움도 내적인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한다는 거지요. 반성해봅니다. 내면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외면이 예쁜 여자만을 좋아하지는 않았는지요. 네, 전 예쁜 여자가 좋습니다. 그런데 예쁜데 착한 여자 보다는 착한데 예쁜 여자가 좋습니다. 뭐가 다르냐고요? 참 애매한 부분이긴 한데요. 예쁜데 착한 여자는 예뻐서 성격까지 좋아 보이는 여자라고 한다면, 착한데 예쁜 여자는 착해서 외모까지 좋아 보이는 여자라고 할 수 있겠네요. 즉 내면이 예쁜 여자요. 또 반성해봅니다. 제 자신의 내면을 예쁘게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는지요. 내면적 성찰 없이 오로지 외면만을 꾸미는 사람은 천박하기 그지없습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인품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은은한 향기와 같은 것인데 제 내면은 얼마나 아름다울지 부끄럽습니다. 가령 인품과 그 인생만으로 아름다워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얼굴만 놓고 보면 수수하고 푸근한 모습이 결코 미남은 아니지만, 우리가 가장 존경하고 흠모하는 인물로 꼽는 백범 김구선생님이 계시지요. 그 분이 가슴에 새기며 살았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相好不如身好 身好不如心好 -「尙書」
‘얼굴이 좋은 것이 몸이 좋은 것만 못하고, 몸이 좋은 것이 마음이 좋은 것만 못하다.’ 김진영이었습니다, 고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