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선배랑 학과 컴퓨터실에서 음악을 듣다가... 
(from http://en.wikipedia.org/wiki/Avril_Lavigne) 에이브릴 라빈의 뮤직비디오를 보게 되었었죠. 어떤 곡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나지만, 분명 그 때 저는 이렇게 말했었어요. "에이브릴 라빈은 날라리인것 같다"라고. 그 말을 듣고 선배가 이렇게 말했죠. "왜?" 그 때는 뭐라고 할 말이 없었어요. 그냥 얼버무렸던 것 같아요. 아는 사람도 아닌데 저렇게 말해도 되는 것이었던가. 지금도 사실 할 말은 없어요. 그냥 당시의 주관적인 인상에 의해 뱉은 말이었으니까요. 이 짦은 대화는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몇년간 기억속에 처박혀 있었죠. 그리고 그 때의 일을 몇년 후에 다시 생각해 보고서 깨달은 것이 있었죠. 편견과 드러난 것에 의존하여 타인을 평가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구나. 그래서 그 뒤로, 사람에 대해 평가하는 것을 유보하는 습관을 들였어요. 충분히 드러났다고 생각이 들 때 까지는 주관적인 인식은 인식으로만 갖고 있고 그 사람이 어떻다고 말하지 않기로 했죠.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어느 학교인가보다 어느 전공을 했는가를 궁금해 하고, 학점이 좋은가 나쁜가보다는 어떤 과목에서 학점을 잘 받았는지 살펴보는 것이죠. 이 생각은 사실 김진영님의 글 "나는 비판할 수 있는가?" /xe/index.php?mid=kim&document_srl=17004 과 맞닿아 있는 내용이기도 해요. 비판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다보면, 비판하기 이전에 정확히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요. 그리고 여기서 평가에 대해 한걸음 더 나갈 수 있어요. 점점 더 많이 알게 되면서 변해가는 평가의 전체적인 내용을 다시한번 평가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현재 시점에서 내가 알고 있는 지식만으로 평가하는 것을 확장해서 과거에 내가 평가했던 것을 다시한번 참조해서 현재에 반영하는 것이죠. 어째서 그렇게 하는 건가요? 왜냐하면, 예전에 내가 내렸던 평가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예요. 내가 저 사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을 때는 (가)라고 생각했는데, 좀 더 알고 보니 (나)였고, 이제와서 생각해 보면 역시 (가)가 맞았던 것 같다. 이런 식이예요. 인식이 변해가는 역사를 잘 관찰하여 기록해 두엇다가 나중에 참조해보면 뭘 잘못 알고 있었는지, 뭘 제대로 알고 있었는지 알 수 있게 되죠. 사람은 살다 보면 반드시 타인을 평가해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 해로운가를 떠나서, 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인지 나를 도와줄 사람인지 등등. 이것은 이해타산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매끄럽게 살자는 것이예요.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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