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귀와의 만남

제목두 가지 종소리를 듣는 사람이 되자. - 박찬욱, <<박찬욱의 몽타주>>中2022-08-16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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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결국 그 설명을 납득했는지, 또는 납득은 못 해도 체념의 사상만큼은 받아들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새 가훈을 받아오라는 요구는 더 없었다. '아니면 말고'는 당당히 우리 가훈으로 정착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 후 1년, 바로 오늘 나는 새 가훈을 짓고 싶게 만드는 사건을 당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할아버지로부터 선물받은 장난감 종을 가지고 놀던 종팔이가 달려와 말했다. "아빠, 이 종은 두 가지 소리를 낼 수 있다?" "······아빠 바뻐." 그때 종팔이가 내게 보여준 행동을 평생 잊지 못하리라. 그녀는 한 번은 종을 그냥 흔들어 맑고 고운 소리를 들려주더니, 다음엔 손바닥으로 몸통을 감싸 쥐고 흔들어 밉고 탁한 소리를 들려주었던 것이다. 아뿔싸, 우리가 소리가 아니라고 들은 소리조차 소리로 들어주는 아이의 너그러운 귀여! 놀라워라, 양달에 찬란히 드러난 아름다움만 보지 않고 응달에 초라하게 묻힌 추함마저 볼 줄 아는 어린이의 현명한 눈이여! 이제 대대로 나의 후손들은 초등학교 1학년 가훈 숙제에 이 한 문장을 적어갈지어다. '두 가지 종소리를 듣는 사람이 되자.'  - 박찬욱, <<박찬욱의 몽타주>>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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