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는 5천 년이래 처음으로 우리의 말과 글은 물론, 우리의 이름까지 빼앗겼소. 이런 일은 저 몽고 때도 없었던 일이오. 일본은 우리를 노예로 여기는 것이 아니오. 우리는 그들의 전리품이오. 같잖은 사무라이 정신에 근거하여, '너희는 우리에게 한 번 졌으니 영원히 우리의 소유물이 되어야 한다.' 그 웃기지도 않은 강령을 노골적으로 세뇌하고 있소. 노예도 자신들의 말과, 이름, 자신들이 부를 노래까지 주인의 허락을 구하진 않소. 우리는 노예조차 되지 못하는 눈먼 가축이오. 영원히 눈먼 가축만 낳는 눈먼 가축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저들이 만들고자 하는 조선이오.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독립이 와도 우리는 영원히 눈먼 가축을 낳는 눈먼 가축이오. 그리고 그게 바로 저들이 원하는 것이오. 상상해 보시오. 우리가 작금의 현실에서도 모두가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기만 한다면, 우리 후손들은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겠소? '아! 우리 민족은 모든 걸 빼앗기고도 가만히 순종하는 참으로 비굴한 민족성을 가진 나라이구나! 우생학이란 것은 참말로 옳은 학문이었구나! 조선인은 뭘 해도 안되는 민족일 수 밖에 없구나! 그저 세태에 영합하여 내 배곯는 것만 면하면 그것이 최선인 줄로만 아는 게 조선인이구나!' 그렇게 결론 내리지 않겠소? 그런 생각이 확고하게 한 번 자리를 잡게 된다면, 그런 민족에게 독립이 백 번이 온 들 도대체 그게 무슨 소용이겠소? 확신하오. 그런 민족에게 독립은 너무 과분한 일이오. 그런 민족은 차라리 영원히 눈먼 가축으로 사는 게 그나마 존속은 하는 길일 것이오. 꽃의 향기는 땅 밑 뿌리에 근원하고, 영혼의 향기도 수 세월 동안 쌓아 올린 인간의 근본에 기인하오. 한겨울의 차가운 얼음장 아래도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인간의 근본은 버리고 싶다 하여 완전히 버릴 수도 없는 것! 우리는 후세의 자긍심이 될 수 없을지언정, 후세의 수치심이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오. 내가 무엇이 되려 하는지 아시오? 나는 작은 촉불이 될 것이오. 빛을 보여주기 위해 멀리 있는 태양을 끌어와야 하는 것은 아니오. 그러지 못한다하여 속절없이 그저 태양이 다시 뜨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것도 아니오. 길고 긴 광막한 어둠에 갇혀도 작은 촉불 하나만 거기에 있었다면 사람들은 어둠을 먼저 기억하지 않고 타오르던 밤의 촉불을 기억할 것이오. 아시겠소? 내가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가장 어두운 시절에도 오직 자주독립만을 원하는 자주적인 민족이오. 저기 엄 동지가 있음으로 해서 이 시대는! 굴종과 수치의 시대만이 아니라 저항과 인내의 시대이기도 하오. 또 김 동지가 있음으로 우리는! 야만적인 폭정과 억압을 말없이 견디기만 하는 무기력한 민족이 아닌 것이오. 이것이 나의 실리요. 나에게 실리가 없다 하셨소? 이 실리는 하찮소? 이 실리는 목숨을 걸 가치가 없는 것이오? - 『웹툰/미래의 골동품 가게』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