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글 '『신의 언어』(프랜시스 콜린스 저) 리뷰와 유신론적 진화론 평가'는 토론 커뮤니티 '아크로'에서 '인문계'님께서 작성하신 글입니다. 이상과 현실사이의 공론장 아크로의 주소는 http://theacro.com/zbxe/home 이고, 해당 글의 링크는 http://theacro.com/zbxe/765127입니다. 링크를 따라가 해당 글의 댓글도 함께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글을 옮기는 것을 허락해주신 '인문계'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신의 언어』(프랜시스 콜린스 저) 리뷰와 유신론적 진화론 평가 1. 글을 쓰게 된 동기 아래의 게시물 "사람 발자국과 공룡 발자국"을 보고 최근에 읽은 책이 기억나서 적어봅니다. 우선 기독교도이자 저명한 생물학자인 프랜시스 콜린스가 믿음과 생물학을 어떻게 조화시키는지 『신의 언어』라는 책의 리뷰를 통해 살펴보고, 그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평가하려고 합니다. 또한, 진화론과 중력이론은 "법칙성"이라는 측면에서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 제 생각을 써볼께요. 참고로, 저는 무신론자입니다. 『신의 언어』 리뷰는 과거에 제가 개인적으로 끄적여 놓았던 메모에서 발췌했습니다. 2. 프랜시스 콜린스가 누구인가? 우선 『신의 언어』를 지은 프랜시스 콜린스가 누구인지 알아보죠. 다들 인간게놈 프로젝트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인간의 DNA를 구성하고 있는 염기의 서열을 일일히 확인해서 인간 DNA의 지도를 만드는 거대한 과학프로젝트입니다. 2003년에 완료된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두 집단에 의해서 주도되었는데, 그 중 공공집단을 이끌었던 생물학자가 프랜시스 콜린스입니다. 참고로 민간집단을 이끈 생물학자는 크레이그 벤터인데, 그가 쓴 『게놈의 기적』이라는 책도 흥미진진합니다. 그런데 프랜시스 콜린스는 역설적이게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입니다. 그는 생물학자로서의 양식과 기독교 신앙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을 지속했고, 『신의 언어』라는 책을 통해 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3. 『신의 언어』 리뷰 프랜시스 콜린스는 『신의 언어』에서 생물학과 종교에 대한 믿음 사이에서 네 가지 정도의 입장을 취할 수 있다고 제시합니다. 무신론, 창조론, 지적설계론, 유신론적 진화론이 그것입나다 먼저 무신론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과학을 통하여 생명과 우주의 신비를 모두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창조론, 특히 젊은 지구 창조론은 성경에 따른 우주탄생의 역사를 문자 그대로 수용하는 입장입니다. 이 입장에 서있는 사람들은 7일간에 걸친 우주의 창조, 아담과 이브의 탄생, 대홍수 등 성경에 기록된 역사가 지구에서 그대로 발생하였다고 믿죠. 지적설계론은 과학적인 입장에서 생명체를 관찰하면, 지적설계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이 생명체에 존재한다는 입장입니다.
프랜시스 콜린스가 주장하는 유신론적 진화론은 무신론적 진화론과 마찬가지로 ①우주가 140억년 전에 탄생하였다는 점, ②진화를 통하여 생물학적 다양성이 생겨났고, 인간 역시 진화과정의 일부라는 점, ③진화과정에서 초자연적 존재의 개입이 불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다만, ①우주의 여러 특성은 생명이 존재하기에 적합하게 (의도적으로) 설계되었다는 점, ②지구상에 처음 생명체가 탄생할 때 신이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③도덕법이나 종교가 인간사회에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므로, 인간정신은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이라는 점을 주장합니다. 즉, 유신론적 진화론은 진화와 관련된 과학적 증거들은 모두 수용하며 진화 매커니즘을 모두 인정하지만, 진화 이전, 우주탄생 이전 등 과학이 도달하기 어려운 영역은 신의 몫으로 남겨두는 입장입니다.
프랜시스 콜린스는 책 말미에 “모든 세계관 가운데 무신론이 제일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시실을 독자여러분이 확신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자신만만하게(?) 써놓았습니다. 4. 유신론적 진화론에 대한 평가 저는 기독교도인 프랜시스 콜린스가 진화론적 증거를 모두 수용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그가 주장했던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은 사실 과학이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굳이 유일신과 같은 특별한 존재를 전제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첫째, 프랜시스 콜린스가 밝힌 것처럼 우주의 여러 특성은 생명이 존재하기에 적합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여러가지 물리상수(예를 들어 전자기력을 결정하는 상수)가 지금과 달랐다면, 현재와 같은 우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하여 현대 우주론은 "멀티 유니버스"라는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지구에 생명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기가막힌 우연이 필요한데(태양과의 거리, 지구의 크기, 지구의 구성성분 등) 이것은 신이 지구를 창조했다는 증거가 아니라, 지구와 같은 행성이 무수히 많다는 사실의 증거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우주에 인간에게 필요한 다양한 특성이 존재하는 것은 신이 인간을 위하여 다양한 특성을 배려한 것이 아니라, 상이한 특성을 지닌 우주가 매우 많다는 가설의 증거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멀티 유니버스는 수학적으로 아름답게 서술되는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둘째, 지구상에 생명체가 탄생할 때 신의 개입이 가능하다는 것과 관련하여, 아직까지 태초의 생명체 탄생에 대한 명확한 답변은 없지만 신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더라도 생명탄생을 설명할 수 있는 다양한 가설이 존재하므로 굳이 신을 전제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셋째, 그는 도덕법이나 언어와 같은 정신현상은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므로 그 자체로 신의 존재에 대한 증거가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프란스 드 발 같은 학자가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처럼 유인원이나 원숭이에게도 분배의 정의와 같은 기초적인 윤리의식이 존재하고 있음이 동물연구를 통하여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덕하님께서 공부하시는 진화심리학도 충분한 증거가 쌓이면 콜린스의 주장에 대한 반론이 될 수 있겠죠.) 즉, 도덕법과 같은 윤리의식은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고유한 정신현상이 아니라, 생존에 유리한 협동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진화과정을 통하여 DNA에 새겨진 인간의 특성이라는 설명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죠. 5. 결론 저는 위에서 언급한 이유로 인해 유신론적 진화론이 아니라 무신론을 선택하였습니다. 다만, 프랜시스 콜린스가 유신론적 진화의 근거로 삼은 세 가지 사항은 신의 존재를 전제하더라도 무리없이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저 같은 사람과 유신론적 진화론자는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젊은 우주 창조론자는 도저히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6. 사족 - 중력이론과 진화론의 "법칙성"에 관해 아래 글을 보면 중력이론은 법칙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진화론은 아직 형성 중인 이론일 뿐이다는 입장을 갖는 분이 일부 계신 것 같습니다. 저는 진화론이 법칙이다는 것을 주장하기에 앞서 중력이론 역시 설명하지 못하는 자연현상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모두 아시는 것처럼 우주는 팽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력이론에 따라 우주공간에 존재하는 물질들은 서로를 잡아당기기 때문에 팽창속도는 점점 느려지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1998년에 이루어진 (노벨상까지 받은) 놀라운 관측결과에 따르면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현재 통용되는 중력이론인 상대성이론은 우주의 팽창이 가속되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아무런 설명을 하지 못합니다. 다만 우주상수(혹은 암흑에너지)라는 걸 갑자기 도입해서, 우리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고 그것이 중력법칙에 반하는 현상을 초래한다고 설명하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이론에서 법칙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입자물리학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현재 입자물리학의 왕좌는 스티븐 와인버그가 종합한 (그래서 이걸로 노벨상도 받은) 표준모형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실험과 관측결과 모두 표준모형과 매우 잘 들어맞기 때문이죠. 그러나 표준모형은 중성미자라는 입자의 질량을 0으로 예측합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카미오칸데라는 괴물같은 장비를 통해 측정한 결과 중성미자의 질량은 0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표준모형은 입자물리학의 왕좌를 빼앗기지 않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유력한 물리학 이론 역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고, 그 이론과 상반되는 실험이나 관측결과가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론들은 법칙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통용되는 이론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현상을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죠. 현행 이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앞으로 탐구해야할 영역일 뿐입니다. (물론, 탐구의 결과 전혀 새로운 이론이 등장할 수 있겠죠.) 저는 진화론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진화론은 지구에서 관찰되는 지질학적, 생물학적, 인류학적 증거를 대부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기 때문에 일반상대성이론이나 표준모형과 같이 "법칙"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