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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난 대중에게 아부하지 않는다." - 크리스토퍼 히친스를 만나다.2011-10-31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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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수혜 기자 goodluck@chosun.com

입력 : 2008.01.18 23:22 / 수정 : 2008.01.19 04:02

http://book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1/19/2008011900310.html

 

 

 

난 대중에게 아부하지 않는다"
크리스토퍼 히친스를 만나다

신은 위대하지 않다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김승욱 옮김|알마|440쪽|2만5000원

자비를 팔다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김정환 옮김|모멘토|157쪽|1만원

신(神)과 테레사 수녀를 인정사정 없이 비판해서 서구 지식인 사회를 벌집 쑤시듯 뒤흔들어 놓은 논객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59)의 집은 매우 고즈넉했다.

그는 오래된 부자 동네에 있는 의젓한 아파트에 사는데, 현관·식당·거실·침실 할 것 없이 보이는 곳마다 엄청나게 많은 책이 서가와 방바닥에 질서정연하게 쌓여있었다. 길고 긴 서가, 그랜드 피아노, 탁자 하나, 의자 넷, 프랑스 영화 '네 멋대로 해라' 포스터 정도를 빼면 텅 비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말끔했다.

서가에는 동서고금의 학자와 작가가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며 소리 없이 꽂혀 있었다. 진화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옆에 신학자 앨리스터 맥그레이스의 '도킨스의 망상'(The Dawkins Delusion)이 꽂혀있고, 버트란드 러셀의 '나는 왜 크리스찬이 아닌가'와 이슬람 학자 이븐 와라크의 '나는 왜 무슬림이 아닌가' 사이에 갖가지 판본의 코란이 꽂혀있는 식이었다.

'최고의 지식인 100인' 5위에 꼽힌 독설가

바로 이 집에서 히친스는 온종일 책 읽고 글 쓰고 수시로 친구들을 맞아들여 밤늦도록 먹고 마시며 갑론을박한다. 손님들은 도킨스를 비롯해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 소설가 살만 루시디 같은 일급 지식인과 워싱턴 정객들이고, 주인장 히친스는 박학과 문재(文才)와 명성에 있어 친구들에 뒤지지 않는 정치 칼럼니스트 겸 문학 평론가이다.

2005년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와 영국 정치평론지 '프로스펙트'가 함께 선정한 '최고의 지식인 100인' 리스트에서 그는 노엄 촘스키(1위), 움베르토 에코(2위), 리처드 도킨스(3위), 바츨라프 하벨(4위)에 이어 5위를 했다.

막 한국판이 나온 '신은 위대하지 않다'(God Is Not Great· 2007년작)와 '자비를 팔다'(The Missionary Position·1995년작)에서 그는 각각 종교의 해악과 테레사 수녀의 비리를 신랄하게 파헤친다. 두 권 모두 미국 뉴욕타임스지(紙)와 영국 더 타임스지(紙) 베스트셀러로 장기간 군림한 문제작이다. "싸우는 게 특기냐"고 묻자 히친스는 "아니오" 했다.

"내 논지를 끝까지 밀어붙이길 좋아할 뿐입니다. 나는 완곡어법이 싫어요. 반박이 두려워서 자기 주장을 굽히거나 얼버무리는 것도요. 그런 논리를 듣고 있자면 고양이가 고문 당하는 소리를 듣는 것 같아요. 나는 다수의 비위를 맞추려고 기자가 된 게 아닙니다."
성인(聖人)의 이면을 파헤치다

'자비를 팔다'에서 그는 테레사 수녀가 희대의 금융 사기범에게 기부금을 받고, 잔혹한 제3세계 독재자들과 우정을 나누고, 빈민에게 '빈곤과 고난을 감수하라'고 설교했다고 비판했다. 격분할 독자가 많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 찬동하건 분개하건, 성녀(聖女)로 존숭받는 저명 인사를 공격하는 것은 상당한 배짱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이름을 날리겠다는 생각으로 쓴 게 아니에요. 테레사 수녀 개인이 아니라 종교 전체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애초에 인도에 갈 때는 오히려 '그분은 다르겠지' 기대했어요. 그러나 내가 취재한 현실은 신화와 달랐어요. 사실 100%의 칭송은 언제나 의심스럽지요. 우리는 모두 인간이니까요. 문제는 간단합니다. 검은 돈을 받았나, 안 받았나? '그렇다'와 '아니다'로 가를 수 있는 질문이지요. 찬반 논쟁에 불이 붙었지만 '팩트가 틀렸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점이 자랑스럽지요. 나는 기자니까요."


"모든 종교는 전체주의적, 그렇다고 무신론이 완승하긴 바라지 않아"

서구에서 오랫동안 종교는 '잊혀진 이슈'였다. 이슬람 근본주의가 부상하면서 지식인들은 새삼 이 주제에 눈을 돌렸다. 히친스와 도킨스가 종교를 혹독하게 비판하는 지식인의 대표 주자다.

'신은 위대하지 않다'에서 그는 기독교·이슬람·유대교·불교를 넘나들며 경전의 모순을 들춰내고,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야만을 폭로한다. 그가 보기에, 모든 종교는 제 아무리 합리적인 형태를 띄고 있어도 근본적으론 전체주의적이다.

―좀 심하다고 생각지 않나요?

"종교를 아예 없애버리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그 점에서 도킨스와 조금 다르죠, 하하. 일전에 도킨스가 지금 당신이 앉아있는 바로 그 의자에 앉았을 때 내가 말했어요. '여기 1000명이 있다고 치자. 설령 그들 모두를 무신론자로 바꿔놓을 수 있다 쳐도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도킨스가 '아니, 왜?' 하더군요. '그래야 논쟁을 계속할 수 있으니까' 라고 대답했어요. 완승(完勝)에는 뭔가 빠진 게 있어요. 내가 전적으로 옳다 해도 반대파가 살아남길 바래요. 논쟁은 어느 쪽이 이기냐에 관계없이 그 자체로 우리를 계몽합니다."


골초들의 '라스트 모히칸'

실은 이쯤에서 그가 담배 연기를 뿜기 시작할 줄 알았다. 그는 전설적인 골초다. TV 토론 프로그램 카메라 앞에서 태연히 담배를 피워 애연가들에게 '라스트 모히칸' 소리를 들었다. "건강을 위해 앞으로 샤워 중에는 피우지 않겠다"고 말해서 혐연가들을 실소하게 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최근 완전 금연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설적인 주당이기도 하다. 그를 만난 기자들은 백이면 백, 술 얘기를 한다. "그는 내게 오전 11시에 위스키를 권했다"고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선창하면 뉴욕타임스 기자가 "오후 1시에 갔더니 자기는 세 번째 잔이라며 내게도 한잔 따랐다"고 화답하는 식이다. 이번에도 오전 11시 30분에 마티니 한잔을 받아 들고 조니 워커 온더락스를 마시는 히친스의 말을 열심히 받아 적었다.

옥스퍼드 출신인 히친스는 말할 때나 글 쓸 때나 명석한 영국식 문어체를 구사하는데, 마실수록 발음과 논지가 유려해진다고 한다. 그는 속필이다. "만찬 도중 '잠깐 실례'하고 사라졌다가 화제가 바뀌기 전에 돌아왔는데, 알고 보니 그새 칼럼을 써서 송고했더라. 그런데 그게 명문이었다"고 감탄하는 지인이 꽤 많다.


"속세는 철저하게 세속적이어야"

그는 유보 없이 종교를 부정하고 혐오한다. "왜냐하면 종교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추켜세우니까요. 종교는 인간이 지식을 쌓는 것을 가로 막아요. '의심하지 말라' '질문은 불경스럽다' '한낱 인간이 신의 섭리를 어찌 알랴' 하는 식으로. 중세의 천동설이 좋은 예지요. 교회는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고, 태양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설파하면서 그에 반론하는 과학자들을 핍박했어요."

―종교의 자유는 어떻게 합니까?

"나는 종교는 철저하게 사적인 영역에 묶어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구도 타인 앞에서 신을 들먹거리거나 선교하지 않고, 어떤 세력도 종교의 계율을 속세에 부과하지 않아야해요. 나는 '이슬람의 얼굴을 한 파시즘'이라는 용어로 이슬람 근본주의를 비판해왔어요. 탈레반 정권 때 아프가니스탄 여자들은 눈만 빠끔히 내놓는 부르카를 입어야 했어요. 그걸 내버려둬야 하나요? 좌파는 '이슬람 계율과 전통을 존중하라'고 해요. 그런 논리는 내가 보기엔 '그들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지 않으면 곤란한 문제가 생길 거야' 하고 협박하는 블랙메일이나 다름없어요. 종정(宗政)은 철저하게 분리되고, 속세는 철저하게 세속적이어야 해요."

―그렇다면 위안은 어디서 구합니까.

"종교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나'라는 개인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있다는 환상에서 출발하죠. 나 스스로는 거기서 깨어나는 것이 자기 해방의 시작이라고 생각하지만, 남들이 개인적으로 믿는다면 말리지 않아요. 타인에게 믿음을 강요하거나 신을 위해 폭력을 저지르라고 부추기지 않는 한 말이죠. 종교가 없어도 위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랑, 섹스, 음악, 철학, 아이러니를 찾는 재미. 인간 존재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느냐, 없느냐 나는 대답할 수 없어요. 신이 없다고 니힐리스트가 될 필요는 없다, 정도로 해두지요."


좌파인가, 네오콘인가

히친스는 오랫동안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1989년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그의 친구 살만 루시디를 겨냥해 "이슬람 모독죄로 처형하라"는 파트와(fatwa·종교적 판결)를 내리고,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나면서 그는 변했다.

―당신이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라는 사람이 많은데요.

"나는 스탈린주의가 싫어요. 자본주의와 다원주의가 공산주의와 전체주의보다는 낫다고 봐요. 미국의 힘이 이슬람 근본주의나 북한의 김정일 체제 같은 신정적(神政的) 파시즘과 싸우는데 사용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네오콘'이라고 부른다면, 그래요, 난 네오콘 맞습니다. 한국 전쟁과 코소보 학살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러면서도 당신은 종교나 인종주의 같은 이슈에 대해서는 상당히 급진적인데요.

"난 '인종'이라는 낱말 자체를 인정하지 않아요. '우리는 우월하고 그들은 열등하다'고 주장하는 온갖 종류의 당파주의를 나는 경멸합니다. 못난 사람들일수록 끊임없이 '나는 좋고 너는 나쁘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고 외치면서 자기 확신을 추구하는 법이거든요."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영국 포트머스에서 해군 장교의 아들로 태어나, 유대계 어머니에게 활달한 기질과 남다른 주량을 물려받았다. 넉넉잖은 형편임에도 부모는 영민한 장남을 명문 사립학교에 보내기 위해 분투했다. 옥스퍼드 대학 재학 시절엔 트로츠키주의자였다. 졸업 후 좌파 성향의 뉴스테이츠맨지(誌)에 들어갔고 그리스 특파원 등을 거쳐 1981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네이션·배니티 페어 등 유력지에 정기적으로 기고하며 '키신저 재판' '미국을 만든 사람 토머스 제퍼슨' '왜 조지 오웰이 중요한가' 등 10여 권의 베스트셀러를 썼다. 우아한 영국 억양, 유려한 문체, 명쾌한 논지, 신랄한 기지로 수많은 팬과 동수의 적을 양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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