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로 여행할 때마다 나는 공항의 짐 찾는 회전대 위에서 가방들이 밀려나와 한없이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 주인이 자기 가방을 발견할 때까지 몇 바퀴씩 돌고 또 도는 가방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또한 그럴듯한 설치미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각기 자기 주인을 닮은 가방들. 단정하고 깨끗한 가방부터 낡고 허름한 가방, 물건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올 듯한 엉성한 가방, 스티커를 잔뜩 붙인 개성을 뽐내는 가방까지..... 각기 갈 길이 다른 그 가방들처럼 가방의 주인들도 뿔뿔이 제 갈 길로 흩어진다. 그러나 이 회전대 위에서 자신의 가방을 찾을 때만큼은 모두 한 곳을 바라보는 동행이다. 어찌 보면 비슷비슷한 듯하지만 똑같은 표정의 가방은 하나도 없다. 비록 똑같은 색깔과 크기의 가방일지라도 그들의 표정은 사뭇 다르다. 과연 내 가방은 어떤 표정을 하고 나타날 것인가. 드디어 내 가방임에 틀림없는, 낯익은 표정의 가방 하나가 내 앞에 와 선다.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스스로 잘 모르듯, 내 가방의 표정도 남들 것처럼 제 점수를 매기기 힘들다. 우리는 제 생긴 꼴은 잘 모르면서 그저 남의 것 흡잡는 데만 열중한다. 어쨌든 나를 똑 빼닮은 가방을 찾아 들고 낯선 거리로 나선다.
- 황주리 작가 에세이, <<날씨가 너무 좋아요>> 中, '창문을 닫아주세요, 날씨가 너무 좋아요'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