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과 이미 사이 '아직'에 절망할 때 '이미'를 보아 문제 속에 들어있는 답안처럼 겨울 속에 들어찬 햇봄처럼 현실 속에 이미 와 있는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세상을 절망할 때 우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보아 아직 피지 않은 꽃을 보기 위해선 먼저 허리 굽혀 흙과 뿌리를 보살피듯 우리 곁의 이미를 품고 길러야 해 저 아득하고 머언 아직과 이미 사이를 하루하루 성실하게 몸으로 생활로 내가 먼저 좋은 세상을 살아내는 정말 닮고 싶은 좋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어야 해 올곧게 뻗은 나무들보다는 휘어 자란 소나무가 더 멋있고 똑바로 흘러가는 물줄기보다는 휘청 굽이친 강줄기가 더 정답고 일직선으로 뚫린 빠른 길 보다는 산 따라 물 따라 가는 길이 더 아름답다 곧은 길 끊어져 길이 없다고 주저앉지 말자 돌아서지 말자 삶은 가는 것 그래도 가는 것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 - 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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