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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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일기2011-10-14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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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14일


 요새는 아주 정신이 없습니다. 취업에 중간고사에 경진대회에 과제에... 살면서 스케쥴이 이정도로 빡빡해 보기는 또 처음이네요. 게다가 심리적으로도 불안한 상태라 정신일도 하사불성을 외치던 저는 어디 갔나 싶네요. 이게 취업이라는 게 참 사람 불안하게 하더라고요. 솔직하게 말해서 살면서 이렇게 간절하게 원했던 것이 있었나 싶었을 정도로 취업을 간절하게 원하고 있어요. 나름 직업관이 뚜렷하다고 생각했는데... 직업관이고 뭐고 마구 지원해서 어디든 붙여주는 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제 친구들도 다들 불안불안 할 거에요. 겉으론 태연한 척, 평소와 다름없이 익살스런 농담을 주고 받지만 왠지 모르게 자조적인 유머가 늘어나네요. 수업도 듣는 둥 마는 둥이고 문자나 메일이 오면 깜짝깜짝 놀라지요. (취업 결과가 문자나 메일로 오는 편입니다.) 저와 제 친구들이 전부 4학년인지라 수업도 그렇게 많지 않아요. 전부 동아리 방에 앉아 공부하거나 취업 관련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곤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뭐랄까...체념과 냉소의 신 즉물주의, 오토 딕스의 "전쟁" 판화의 한 장면이 겹쳐 보이는군요.


 취업에는 어떤 심리가 작용하는지 사람들을 조금은 광적으로 바꿔 놓기도 하더군요. 성경 요한복음 5장에 베데스다의 연못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끔 연못에 천사가 내려와서 연못물을 휘젓고 가는데, 그 후 연못에 들어간 첫번째 사람은 어떤 병도 낫는다는군요. 그 연못 주변에는 많은 병자들이 몰려 있습니다. 개중에는 자그마치 38년이나 연못 주변에서 살고 있는 병자도 있어요. 이 병자가 38년이나 연못 주변에 있으면서도 치료받지 못한 이유가...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병자라서 그렇습니다. 천사가 연못물을 휘저어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연못물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긴 세월동안 연못 주변에서 머물고 있었어요. 희망이 눈 앞에 있으니 포기 할래야 할 수가 없다고 할까? 취업도 당장 눈 앞에서 아른아른 거리고 있으니 더욱 절망적으로 바라게 되고요. 


 동아리 방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저랑 졸업 작품을 같이 만들고 있는 분이 오셨어요. 내일의 스케쥴 때문에 잠깐 이야기를 나눴는데 가기 전에 이런 이야기를 해 주시더군요. 

[친구 놈이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다. 공무원 학원에서 교실에 들어갔는데 자그마치 300명이나 앉아 있더라. 첫 수업에 선생이 들어와서 하는 첫마디가 이거란다. "주변 사람들 둘러보세요. 얼굴들 서로 봤어요? 여러분. 올해에는 여기서 딱 3분만 공무원 합격하십니다."]

참... 어렵군요... 그 교실의 300분이 순간 베데스다 연못 주변의 병자들 같이 느껴집니다. 사실 이쯤 되면 공무원 취업이 인생의 어떤 목적에 다다르기 위한 과정인지, 오히려 그 역인지 알쏭달쏭할 만하지 않나요? 38년이나 베데스다 연못에 살았던 그 병자는 낫기 위해 그곳에 있는 건가요, 베데스다 연못 때문에 거기 있는 건가요. 


 저도 이런 것을 경계코자 항상 취업을 넘어선 저의 목적을 상기하곤 합니다만, 어렵지요. 지행합일이라고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일치하기는 쉬워요. 그런데 지심합일이라고 해도 될려나? 아는 것과 내 마음이 일치하는 것은 어렵지요. 새치기를 하면 안됨을 알고 행하지 않는 것은 쉬워도, 새치기를 하면 안됨을 알지만 당장 새치기를 해서 편하고자 하는 마음 자체를 들지 않게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어디 제 마음이 마음대로 되나요. 마음은 마음이라 마음대로 되지 않는게 마음인데요.


 제 심리상태가 이런지라 세상이 너무나 차갑게 보여요. 거진 2년 전에 잠깐 보았던 오토딕스 작품이 떠오를 정도니...... 세상이 제가 전공하는 기계처럼 적나라한 인과 속에 맞물려 돌아가는거 같군요. 사실 책상 머리에 앉을 때에는 "세상은 우리가 아는 것 보다 조금 더 신비롭지 않을까?" 라는 내용의 글이 제 머릿속에 있었거던요? 요 근래 빛보다 빠른 입자를 발견했다 그러지 않나, 광화문에 유에프오가 나타났지 그러지 않나...... 파동함수붕괴와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왓칭 효과, 로젠탈 효과를 잘 짬뽕해서 무언가 신비로운 세상에 대해 써볼려 했는데... 역시나 지심합일은 어려워요. 어려워. 



후우우우우우... 그냥 제 푸념들이었어요. 잠이나 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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