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유머’랑 ‘음악’은 만국 공통어라고들 하잖아요.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화제로 꺼내기가 참 좋지요.
몇 년 전에 딱히 약속을 한 건 아니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지속적으로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노신사 한 분과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정녕 ‘젠틀맨’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분이셨고, 어떤 하나를 주제 삼아 대화하기를 진심으로 행복해하시는 분이셨지요. 함께 마주하고 있는 저는 저절로 즐거워졌고요. 그런데 한참 많이 부족한 저니까 대화를 나눴다고는 하긴 좀 어려울 것 같기도 하네요. 대개는 문화, 예술 분야에 대해 무지한 제게 여러 작품을 추천해가며 조곤조곤히 쉽게 설명해주셨지요.
어느 날은 ‘음악’에 대해서였어요. 좋아하는 장르 이야기가 나왔는데, 어떤 하나를 콕 집어서 말하기가 참 난감하다고 하시더라고요. 허허~ 사람 좋게 웃으시면서 결국은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저는 장르를 골라서 떡하니 말로 뱉었는데 말입니다. 잉~ 그럼 전 뭐가 되나요~! 하하. 농담농담입니다. 활기 넘치는 표정과 매우 진중한 태도로 음악에 대해 엄청난 찬사를 하셨고요. 이어서 만약 본인이 어떤 한정된, 한 장르를 좋아한다고 말하게 되는 순간, 마치 음악에 대해 선을 긋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린 편협한 사람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하셨어요. 한 가수, 한 장르만 주구장창 좋아하게 된다면 죽을 때까지 다른 위대한 음악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조차 가지지 못할 게 아니냐며 그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덧붙이셨죠.
당시에 그 분의 말이 아주 가슴에 와 닿았어요. 그 영향으로 뒤에 저도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하려고 노력을 많이는 하고 있었지요. 그치만 이게 참 쉽지가 않네요. 격한 공감은 했습니다만, 전 사람마다 고유한, 개인의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아마도 취향이 여러 요인들로 인해 만들어졌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제 귀가 어느 특정 장르들에 길들여져서 딱딱하게 굳어버렸는지, 그저 듣기에 좋고 익숙한 것들만 거듭 찾게 되더라고요.
우리가 다른 것들보다 유난히 더 좋아하는 어떤 악절을 들으면서 마음속에 어떤 이미지들의 세계를 떠올려보는 것은 음악을 음미하는 한 방식이다. 문학적, 신화적 기억들, 특히 개인적인 기억들, 이 모든 것이 한데 뒤섞여서 마음이 아늑해지는 복합적이고 특별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우리의 정신의 허물벗기와도 같은 것이다. 하기야 이는 지극히 자의적인 해석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성향에 더 잘 어울리는 해석을 이끌어낼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개개의 해석은 그 사랑의 고유한 독창성을 드러낼 것이다. - <여름>, 알베르 까뮈, p65.
Yvan Attal의 영화 에서 두 컷을 가져왔습니다. 한 음반 가게에서 남편의 외도로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Gabrielle(Charlotte Gainsbourg)과 낯선 남자, L'inconnu(Johnny Depp)가 Radiohead의 'Creep'이라는 곡을 함께 감상하며 서로가 미묘하게 교감하는 모습을 아주 섬세하게 잘 그린 명장면입니다. 이 장면, 아시는 분은 아실테죠.
'음악적인 코드'라고 하면 좋을까요? 자그마한 바람이 있다면, 저와 음악 코드가 아주 비슷한 사람과 한 곡을 같이 들으면서 고개 끄덕이고 눈빛 교환도 뿅쁑뺭뼝하고파요~! 그 곡에 대한 감상도 서로 주고받고 싶고 말이죠. 저, 영화에 감정이입 너무 심하게 한 거 인정인정. 크큭. 그런데 말입니다, 좋아하는 음악적 취향과 완벽히 일치하는 사람 만나기가 아주 어렵다고 느끼곤 합니다. 뭐, 예전에 좋아하는 음악적인 코드가 상당히 닮은 어떤 사람을 만나보긴 했어요. 근데 다른 일로 크게 싸우는 바람에 더 깊은 얘길 못해봐서 아쉬움이 크네요.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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