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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2012-10-10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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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의 어원은 멸치가 급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물 밖으로 나오면 바로 죽어버린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멸어(蔑魚), 멸치어(蔑致魚)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요. 언젠가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어부들이 그물을 풀자, 망태로부터 잡힌 멸치들이 왈칵 쏟아져 나오며, 소란스럽게 파닥파닥 튀는 장면을 본 적이 있어요. 수개월동안 제가 딱 그 멸치 같았죠. 멸치처럼 곧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으니 말입니다. 과거형으로 썼지만 사실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25살. 나이 세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최고 정점을 찍을 것이라 뻔뻔스레 자부하던 저였지요. 가장 즐겁고 열심히 사는 나이가 아닙니까. 그런데 제 개인적으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좀 버거운 때를 살아가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잠시 긴 사족을 달아볼게요. 몸이 허약했던 언니에 비해, 상대적으로 잔병치레 없이 너무나 건강했던 저는 스무 살 재수를 하면서부터 몸이 골골대기 시작한 것 같아요. 최근에 저는 말 그대로 '저질 체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두어 시간 정도면 모든 에너지가 방전되고 기진맥진하여, 두 다리가 후들거려요. 체력의 한계를 느끼면서 자연스레 말수가 줄게 되는 등 나름대로 에너지를 절약하는 효율적인 행동을 골라 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본의 아니게, 쿨하거나 시니컬 해 보인다는 묘사를 받거나 때로는 자리가 불편해 보인다든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인다는 오해를 사게 되었습니다. 속상하지만 구차한 소리 늘어놓는 게 싫어, 변명을 달지 않았어요. 어쨌든 그럼에도 좋은 사람들과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합죽이가 되어 자리에 죽치고 앉아있죠. 두어 시간 이상을 함께 보낸다면 제가 엄청나게 좋아하는 사람들이에요.

 


 



얼마 전에 병원에서 링거를 맞는데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재수 시절에 한 친구의 책상에 적혀 있던 문구였어요. 처음엔 그 말이 한번에 와 닿지 않을뿐더러, 사실 허세의 끼를 좀 보인 친구 모습에 속으론 거부반응을 일으켰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 그 말이 어디에든 다 맞는 말인 것 같아서 가끔 혼자 되뇌곤 해요. 고통의 극한 상황에 치달은 후, 어느 정도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점차 인고할 만한 정도의 아픔으로 흘러간다는 다소 이상한 확신을 하게 됩니다. 어떠한 고통이든 대개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점차 나아지거나 아니면 그 고통에 서서히 적응되는 것 같거든요. 힘든 순간에도 머리로는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고 아는 것이지요.  

 

 

근래에 친구들한테 웃으며 ‘나 진짜 힘들어.’, ‘죽을 것 같다.’는 자조 섞인 부정적인 말을 자주 했어요. 솔직히 이런 말을 입 밖에 쉬이 내는 성격이 아니지만, 여차여차 총체적 난국에 진심으로 힘에 부쳤거든요. 그런데 한 친구가 저를 보더니, 웃고 있다며 아직 덜 힘들어 보인다고 하는 게 아닌가요. 또, 한 교수님께서는 제게서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이 보여서 좋다는, 제가 처한 상황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전에는 스스로 저질 체력을 희화화하거나 잔뜩 날카로워진 태도를 감추기 위해 유머 있게 대하려는 저의 모습을 몰랐어요. 생각해보면 꼭 나쁘지만은 않은 모습과 자세인 것 같아요. 사실 사람이 항상 건강한 생각과 몸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사람이니까 수시로 오락가락하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어느 한 편으로는 무거운 사람이 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가벼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어쨌든 왠지 그런 내가 그냥 좋다는, 그 무엇에도 초연하고 웃어넘기는 태도가 참 중요한 것 같다고 느낍니다. Ch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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