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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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경쟁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 열등감.2014-02-12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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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김진영입니다.

 

 경쟁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 이번에는 ‘열등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혹시 첫 번째 이야기를 아직 읽지 않으신 분이라면 이 글의 전편인 ‘경쟁에 관한 첫 번째 이야기, 성취욕과 승부욕.(https://nolpan.com/gallery/jykim/?vid=28)’을 먼저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하나의 글에 써야할 내용을 편의상 두 개의 글로 나눠 작성한 것이거든요. 첫 번째 이야기를 읽고 두 번째 이야기를 읽으신다고 해도 ‘아니, 뭔 헛소리야?’라는 의문을 충분히 갖게 되실 테지만, 부족한 제 글을 이해하시는데 조금이나마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럼 두 번째이면서 마지막인 경쟁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 시작합니다!

 

 

 

열등감.jpg

 

 

 지난 글에서는 경쟁상황에서의 성취욕과 승부욕이라는 요소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그러면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여러분께 자문을 구했고요. 이 글에서는 제가 드렸던 질문에 대한 제 나름의 답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열등감을 극복함으로써 경쟁에 따른 피로를 줄이고, 성취욕과 승부욕의 적절한 조화를 도와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열등감이 뭘까요? 사전에서는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고 낮추어 평가하는 생각’이라고 하네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열등감이 있는지 없는지, 혹은 심하게 느낀다든지 그다지 느끼지 않는다든지……. 스스로를 어떤 성향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추측하건데 이 글을 읽으실 정도의 관대한 분이라면 아마 저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분이지 않을까 추측이 되는데 어떠신가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양한 방식으로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적당하면 무방하지만 도가 지나치면 주변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하고요. 불행히도 저에게도 저를 향해 강한 열등감을 느끼는 친구들이 몇몇 있어, 저는 그들 때문에 곧잘 불편함과 피곤함을 느끼고는 했어요. 그들을 대하며 저는 무시하는 태도로 그다지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피해를 입을 때마다 짜증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어요. 

 

 ‘승부욕이 지나치고 열등감이 지나친 사람 때문에 경쟁에서 늘 피해를 봤다.’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사람들은 왜 자신이 진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이기려고 하는 것인지 그것이 늘 불만이었고요. 그런데 얼마 전 생각이 바뀔 일이 있었어요. 얼마 전 지인을 만나 이러한 불만을 털어놓았는데……. 그런데 웬걸, 지인은 제가 말한 사례를 제 의도와는 달리 제가 가진 열등감이 드러나는 사례로 받아들이더라고요. 왜 그렇게 이해했냐는 제 질문에 지인은 진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것은 사례 속의 저 또한 마찬가지지 않느냐고 하는데 저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저 또한 자신이 진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니요. 저는 제 스스로를 열등감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열등감이 드러나는 대부분의 방식과는 조금은 차이가 있지만 저 또한 저만의 방식으로 열등감을 표현하고 있더라고요. 그 방식을 몇 가지 소개해볼게요.

 

 1) 경쟁에서 고의로 져주기.

 

 민망하지만 어차피 지난 일, 시원하게 제 자랑을 한 번 하자면 고등학교 시절 저의 스타크래프트 실력은 단연 일품이었어요. 잘하는 정도가 특출해서 학교에서 두 번째로 잘한다는 친구랑 해도 너무나도 손쉽게 이길 정도였어요. 그러다보니 친구들은 다른 학교 친구들을 연결해주며 자기 대신 이겨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고, 저를 이기기 위해 다른 학교 친구들을 섭외해오기도 했어요. 다른 학교와 학교 대항으로 경기를 진행하기도 했고, 때로는 PC방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프로게임단 연습생 신분의 사람도 있었고, 준 프로게이머도 있었지만 저는 단 한 번도 지지 않았어요. 어마어마하네요. 뿌듯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불안감이 엄습해왔어요. ‘여기서 만약에 내가 진다면 어떻게 하지? 내가 그동안 쌓아왔던 업적은 한 번에 붕괴되는 것인가?’ 이런 걱정이 들면서부터는 게임을 게임으로 즐길 수 없게 되었어요. 지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되었고, 언젠가는 저보다 더 잘하는 사람을 만나 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어요. 저로서는 이러한 상황이 외줄타기를 타는 것 같이 불편하고 불안했어요. 그 때 제가 찾은 답은 ‘져주기’였어요. 고의로 져주는 것이죠. 한 번 져주고 나니 그간 우쭐댔던 것만큼 비아냥거림을 당해야했지만 마음만은 정말 편했어요. 우선 부담감이 줄어 마음이 편했고, 저를 이기고 기뻐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저 또한 기뻤어요.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별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했고요. 그러면서도 패배에 대해서는 속상하지 않았어요. 마음속으로는 실력으로는 제가 절대로 지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또한 ‘내가 너희들을 가지고 놀고 있어’라는 알 수 없는 우월감이 한편으로 들기도 했고요.

 

 2) 경쟁에 적당히 참여하기.

 

 어느 단체나 행사에 참여할 때 구성원들의 참여를 좀 더 효과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 선착순으로 무슨 혜택을 주겠다는 말들을 많이 해요. 예를 들면 운동경기장이나 공연장에서 좀 더 응원이나 호응에 열정적으로 참여해주는 사람에게 선물을 준다거나, 병영훈련소나 학창시절 수련회에서 선착순 다섯 명까지 얼차려 열외의 혜택을 준다거나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러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그 혜택을 쟁취하기 위해서 나서게 되잖아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반대에요. 아무 생각 없다가도 선착순이니 뭐니 해버리면 바로 김이 식어버려서 참여에의 의지가 있다가도 사라져 버려요. 그런 것 없이도 전 충분히 나름의 최선을 다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그것을 강요하다니……. ‘너희들이 감히 나의 의지를 가지고 장난을 쳐? 난 너희들의 장난에 놀아나지 않겠어.’라는 꼬일 대로 꼬인 반발의식이 들고, 더불어 경쟁적으로 열심히 했다가 경쟁에 밀려 그것을 성취하지 못했을 때의 허탈함을 느끼고 싶지 않은 마음도 들어요. 선착순 다섯 명이라는 것에 열심히 참여해서 만약에 여섯 번째로 들어와 혜택을 누리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열심히 안하고 꼴등을 하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인 것이지요.

 

 3) 경쟁하기를 포기하기.

 

 대학생 시절 저는 상대평가라는 학교의 평가시스템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아무리 열심히 하고 잘 해도 누군가는 결국 좋지 않은 성적을 받아야만 하는데, 그 누군가가 하필 제가 되고 만다면 당연히 좋아할 수가 없겠죠. 제 전공은 중어중문이에요. 과목 중에 중국어 회화수업이 제법 많이 있었는데, 이런 수업을 들을 때면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 중에 대부분이 중국에서 5년에서 10년까지 살다온 언어특기자 학생들이에요. 원어민 수준으로 중국어를 구사하는 학생들과 대학에서 처음 중국어를 접한 제가 경쟁해서 상대평가를 받는다면 어떻게 제가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겠어요. 물론 실제로 극복해내기도 한 오승렬님과 같은 괴물도 있긴 하지만, 저는 좀처럼 그럴 의지가 생겨나지를 않더라고요. 교수님들도 난감했을 거예요. 단기간에는 극복 불가능한 실력이라는 것이 있는데 제가 아무리 노력해서 잘한다고 한들 원래 잘하는 친구들보다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는 문제잖아요. 저는 이런 점을 특별히 문제 삼고 싶지는 않지만 좋아할 수는 없었고, 결국 적당히 포기하게 되었어요.

 

 4) 경쟁상황을 외면하기.

 

 어느 회사에서 정직원 전환을 전제로 인턴사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어요. 처음에는 모두 다 전환될 것처럼 이야기를 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기존인원 중에 반 정도 이상은 전환이 되지 않을 거라고 통보해주더라고요. 그러고 나니 사이가 각별했던 동기들 사이에 묘한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서로가 서로를 경쟁상대로 여기기 시작한 것이지요. 서로 어떻게든 일찍 퇴근하자고 입을 모으던 동기들이 그날을 기점으로 서로에게는 몰래 어떻게든 늦게 퇴근하려고 안달이었고, 선배들과의 자리는 일단 피하고 보려고 했던 동기들이 선배들과의 자리를 따로 만들지 못해 안달이었어요. 서로의 과제에 완성도를 높여주기 위해 피드백을 주고받던 동기들이 어느 순간 만나지 않게 되었고,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자기 것인 냥 먼저 보고해버렸어요. 두루두루 친했던 동기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파벌이 생기게 되었고, 불행 중 다행으로 저는 그런 상황에서 피해를 당하거나 견제를 받지 않았지만 일을 하는 게 별로 재미없어져버렸어요. 당시 일을 상당히 즐기던 저였는데도 이와 같은 경쟁상황에서는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어요. 다른 사람을 견제하며 동시에 같이 일한다는 것이 상당히 피곤한 일이더라고요.

 

 

 사실 저 또한 경쟁에서 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두려웠던 나약한 존재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져주기· 적당히 참여하기·포기하기·외면하기를 통해 경쟁이 주는 압박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것이고요. 그러면서도 실패를 겪을 때마다 다른 사람 탓을 했지 제 탓을 하며 반성을 하지는 않았어요. 경쟁사회가 어쩌니 사람들이 어쩌니 하며 불평을 하고,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상황을 피해 다니기만 했어요. 이렇게 문제의 원인이라고 찾은 것이 제 자신을 바꾸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바꾸는 것에 있다 보니 해결방법을 찾기가 어려웠고, 어쩔 수 없이 이때가지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글의 서두에서 저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제 나름의 답으로 열등감 극복을 제시했어요. 그것으로써 경쟁에 따른 피로를 줄이고, 성취욕과 승부욕의 적절한 조화를 도와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요. 열등감 극복이라……. 조금은 뻔한 이야기지만 자기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열등감 극복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죠. 자기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과 마주한다는 것, 그리고 더욱이 그 모습을 자기 자신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에게 꽤나 불편한 일일 테니까요.

 

 작은 용기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용기로 자기 자신이 조금 못난 사람이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음, 저는 못생겼지만 엄청 섹시해요. 뭐 어때요, 좀 못났으면. 나의 어떠한 부분이 조금 못났다고 해서 내가 전체적으로 못난 것도 아니에요. 설령 전체적으로 못났다고 한들 내가 천하에 때려죽일 놈이 된다거나 하는 건 또 아니잖아요? 어차피 우리는 항상 잘난 사람일 수가 없어요. 우리는 늘 조마조마하고 위태로운 지경에서 살고 있는 걸요.

 

 저 또한 얼마 전까지는 열등감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다 지인과의 대화를 통해 제가 열등감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요. 여러분들 중에 혹시 열등감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그러면서 경쟁에서는 강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계신다면 제가 제 사례를 예로 든 것처럼 다른 어떠한 방식으로 은연중에 열등감을 드러내고 계시지는 않나 살펴보시길 바랄게요. 나 자신은 그렇지 않을 거라는 바로 그 생각이 자신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합니다.

 

 생각해보면 언제 제대로 한 번 경쟁 해본 적 없는 것 같아요. 그러나 이렇게 제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고 나니, 앞으로는 굳이 경쟁을 피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호연지기가 차올라요. 비로소 경쟁을 즐길만한 마음자세를 조금 갖췄다고나 할까요? 살면서 만나게 될 다양한 경쟁으로부터 저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까지 모든 사람들이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길 바라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진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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