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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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도서) 변호사 논증법 - 논쟁에서 진짜 이기는 방법2025-06-03 20:04
카테고리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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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훌륭한 삶이란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이다.’ 책을 통해 알게 된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자, 제 삶의 지향점이 된 글입니다. 책 읽기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는 것, 지식을 통해 저만의 지혜를 만드는 것, 해보지 않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아름다운 문장이나 생각을 만나 고양감을 느끼는 것을 좋아합니다. 책 전반에 대한 소개가 아닌, 제게 좋은 자극이 되었던 점을 소개하며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변호사 논증법.jpg 

- 제목 : 변호사 논증법
- 작가 : 최훈
- 출판사 : 웅진지식하우스

- 출판일 : 2010.08.23(초판)

- 읽은 시기 : 25.05 ~ 25.06


 

 안녕하세요, 김진영입니다.


 이 책을 언제, 왜 샀는지는 기억나지는 않으나 언젠가 누군가에게 말싸움에 지고 나서지 않을까 싶어요. 책장에서 이 책을 다시 꺼내든 이유가 지인과의 논쟁 후, 다시 만나게 되면 코를 아주 납작하게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거든요. 콧잔등을 아주 그냥 따악! 책 표지에 적혀 있는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4가지 실전 논리’, “그래, 아주 혼꾸멍을 내주마!”라고 생각했어요.


 드라마에서 보듯 무쌍을 찍는 변호사의 냉정하고 현란한 논리를 배울 거라는 제 예상과는 달리, 이 책의 저자가 변호사를 택한 이유는 자비심 때문이었어요. 저자는 우리가 변호사에게 배워야 할 것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자비심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자비로운 마음을 가졌을 때 진정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논쟁에서도 이길 수 있다고요. 어찌, 제가 책을 잘못 찾은...


 이 책의 저자인 최훈 작가님은 철학을 전공하신 분으로, 책을 저술한 2010년에도 그리고 지금 2025년에도 대학교 교수로 계십니다. 저서로는 철학, 윤리학, 논리학, 과학철학 분야의 책이 있어요. 학문적인 연구 성과를 대중과 소통하고 나누는 일을 철학자의 사명으로 여기고 계신다고 해요. 하기야, 철학적 성찰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이 제가 생각한 개싸움 방법을 책으로 내지는 않으셨겠죠.


 저자는 논증법의 세계에 들어가기 전, 논증이 무엇인지부터 정의합니다. 논증의 궁극적 목적은 상대를 설득하는 것, 그러니 일방적인 논증이 아닌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대화를 강조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변호사의 논증법의 네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자비로운 해석의 원칙 + 역지사지의 원칙 
    : 상대의 주장에 자비를 베풀어 합리적인 주장으로 해석하라.
      상대의 주장에서 잘못부터 찾아내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소통하라.
  2. 근거 제시의 원칙 + 근거 확인의 원칙
    :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고, 상대의 논증에서도 그런 근거를 찾아라.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근거가 제시되고, 주장이 올바르게 도출되면 그 주장을 받아들일 것이다.
  3. 입증의 책임 원칙 + 입증의 권리 원칙
    : 입증의 책임이 있는 사람은 그 책임을 회피하지 마라. 그리고 상대방이 가진 입증의 권리를 침해하지 마라.
      논리적인 설득에 참여하는 사람은 자신의 주장이 옳음을 밝힐 책임과 권리가 있다.
  4. 논점 일탈 금지의 원칙
    논점에서 벗어나지 마라. 주장과 근거가 주제와 증거에 어긋나지 않도록 유의하라.

 네 가지 원칙은 챕터 1~12 중에 1에 기술된 내용입니다. 이후 챕터인 2~12에서는 네 가지 원칙이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이야기와 학술적인 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제게 인상 깊었던 내용을 하나 소개합니다.

 

<논리법정 - 개고기의 논리>


 2001년 MBC 라디오의 손석희 아나운서가 개고기 식용 문제를 놓고 브리지트 바르도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손석희 아나운서의 예리하고 통쾌한 대화술의 사례로 이 인터뷰를 꼽는다. 일부만 보자.


손석희 : 인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소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소를 먹는 것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화적인 차이를 인정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바르도 : 물론 저는 그러한 문화적인 차이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소는 먹기 위한 동물이지만 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몇 개국을 제외한 세계의 어느 나라에서도 개를 먹지 않습니다. 문화적인 나라라면 어떠한 나라에서도 개를 먹지 않습니다.

손석희 : 소를 먹기 위해 키우는 나라도 있지만 개를 먹기 위해 키우는 나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개를 먹기 위해서 키우는 나라가 소수라고 해서 배척 받는다면 문화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나는 이 인터뷰에서 손석희 아나운서가 뛰어난 대화술을 보였다고 생각하지만, 그리고 그가 대체로 논리적이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경우만은 올바른 논쟁을 벌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 “소는 먹기 위한 동물이지만 개는 그렇지 않습니다.”라는 바르도의 진술에 숨은 뜻을 자비롭게 해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그녀는 개가 먹기 위한 동물이 아니라고 말할까? 개를 먹기 위해 키우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그녀가 모를까? 그녀의 주장은 개를 먹기 위해 키우는 나라가 있다 또는 없다고 하는 사실적인 진술이 아니라 개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당위적인 진술이다. 따라서 손석희 아나운서는 그 당위에 대해 개를 먹어도 괜찮다는, 또 다른 당위적인 진술로 반박해야지 사실을 들이대면서 반박해서는 안 되었다. 네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데 나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많다고 답변하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혼꾸멍을 내주려던 지인과 어떻게 이야기를 다시 하면 좋을까 생각해봤어요. 저는 지인과 다시 만나 있는 그대로 이야기 했어요. 너를 혼꾸멍을 내주려고 했지만, 이 책이 널 살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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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읽은 『쇼펜하우어의 토론의 법칙』이란 책이 생각났어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 토론에서 이기는 방법을 다룬 책인데요. 상대방의 주장을 과장 해석하라, 인신공격하라, 불리하면 쟁점을 바꿔라 등의 방법이 소개되어 있었어요. 논쟁에서 이겨도 상대가 진정으로 수긍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감정이 상한다면,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이기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제가 지인의 코를 납작하게 하고 며칠은 의기양양하더라도, 서로 긍정적인 관계를 계속해나갈 수 있을까요? 논증의 목적은 결국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니 올바른 방식으로 논쟁해야 한다는 저자의 메시지처럼, 말로써 상대를 제압하기보다는 생산적인 방식으로 대화를 전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누군가와 논쟁이 붙을 일이 있으면, 논증의 네 가지 원칙을 지켜 대화를 해보려고요. 보통은 대화를 하다가 부딪치는 부분은 감정적인 부분이잖아요. 상대가 제 말에 발끈하는 부분이 있으면 차분히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묻고, 다시 저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해보려고요. 반대로 상대의 말에 제가 발끈하게 되는 부분이 있으면 차분히 저의 감정과 생각을 설명하고, 상대의 설명을 통해 의도를 이해하려는 대화를 해보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서로 이기려거나 이해하지 않으려고 대화하는 게 아니잖아요. 서로 좋은 것을 공유하거나 좋은 방향의 합의를 찾기 위해 대화하는 거니까요.


 쉽고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깨달음이 있어 좋았습니다.



▶ 함께 소개하는 것

1. 최훈 작가님 홈페이지 - https://sites.google.com/view/choih0510

2. 박인식 님의 브런치 - https://brunch.co.kr/@ispark1955/840#comments

  *해당 책이 온전한 쇼펜하우어의 저작이 아니라는 작성자님의 글이 흥미로워서 함께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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