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유적
예술을 인간다움을 향한 순수하면서도 숭고한 결정체라 생각하기도 하고, 자기들만의 문화에서 더욱 공고해지는 어쭙잖은 허영이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여전히 잘 모르지만 경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예술은 실재하지 않더라도 황홀경은 실재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직관적인 구상 작품, 채도가 낮은 작품, 기술 완성도나 성의가 보이는 작품, 내면을 자극하여 생각하게 하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산다는 건 삶의 답을 찾는 일이라 생각하는데, 예술을 한다는 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질문에 의미를 부여하며 일상 속 문화공간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 장소 : 담 갤러리- 위치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도신로 198 1층 / 서울 지하철 1호선 신길역 또는 영등포역에서 도보 15분 거리 - 방문 일자 : 2025.06.29
안녕하세요, 김진영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원래 이런저런 계획이 있었어요. 요즘 정신적 피로가 극에 달해서 기분을 환기하고 집중력을 되찾을만한 활동을 할 생각이었거든요. 우선 로또 1등에 당첨될 생각이었고, 규모가 큰 전시를 여러 개 구경하며 머릿속에 때려 박아 정신을 강제 정화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어요. 하지만 밖은 습하고 에어컨은 산뜻한데 침대는 따스워 어디 계획대로 될 턱이 있나요. 결국 친구와 만나 술을 진탕 먹고 늦게 집에 와 잠이 들었는데, 창밖 햇살이 시나브로 눈에 담겨 아침 일찍부터 잠에서 깨어났어요. 어쩐지 전날의 숙취가 무겁지 않았어요. 분명 어제 전쟁같이 술을 마셨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평화로운 건지, 이 평화를 지켜내자며 오전 내 침대 속 따스함을 지켜냈어요. 이불을 안고 뒹굴뒹굴, 이것이 바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교양 있는 도시인의 올바른 주말 에티켓이라 할 수 있죠.
약간은 양심에 찔려 일어났어요. 계획 중에 하나는 하자 마음먹고 담 갤러리로 향했어요. 담 갤러리는 24년에 생긴 걸로 추정되는 영등포 신길동에 있는 신생 갤러리인데요. 집에서 멀지 않아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 이런 곳에 갤러리가 생겼다니 평소 궁금했거든요. 어느 날 출근 버스에서 창밖을 보는데 ‘담 갤러리’라고 보이길래 ‘응? 여기에 웬 갤러리가?’라고 의아했어요. 갤러리라는 이름을 딴 카페거나 공방일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진짜 갤러리더라고요. 그도 그럴 것이 신길동은 원래 문화공간을 찾아보기 힘든 그런 동네기도 하고, 바로 옆이 재래시장인데다가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느낌으로 그런 위치에 존재하고 있거든요.
입구에 ‘나의 하루를 은은하게 채워주는 작지만 소중한 순간들. 일상 속 예술을 만나는 공간.’이라는 문구가 먼저 반겼어요. 마음에 들어요. 담 갤러리 블로그에 있는 소개 글 중 일부입니다.
<담(淡) 갤러리> 갤러리 담은 담채(淡彩 : 농도를 묽게 하여 연하게 채색)와 같은 의미로 맑을 담(淡)을 사용합니다. 담담하고 엷은 채색의 느낌처럼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일상 속 예술을 만나는 공간입니다.
입장하기 전 갤러리 외관을 눈에 담으며, 굉장히 주제넘은 생각이겠지만 이 갤러리가 과연 수익성이 유지가 될까 생각했어요. 제가 알기로는 근방에 갤러리 비스무리한 것도 없거든요. 이곳을 동네 주민이 쉬이 들러 구경하고 작품을 구매할까, 먼 곳에서 굳이 이곳을 찾아 발걸음을 할까, 그렇다면 작가는 이곳을 매력적인 공간이라고 여길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쉽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저 따위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끔 지방자치단체나, 건물주나, 돈 많은 갤러리스트가 운영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입장했어요.
첫 느낌은 굉장히 좋았어요. 예뻤고 따스했어요. 화이트톤 무드에 검정색 작품으로 꾸며진 공간은 마음을 편안하게 했어요. 문도 제대로 닫지 못해 허둥대던 저를 대신하여 직원 분인지 작가님인지 저를 대신하여 문을 닫아주셨어요. 그러고는 친절하고 따뜻한 말투로 가방은 의자 위에 올려놓고 편하게 구경해도 된다고 안내해주셨어요. 가방에는 편의점 휴지 밖에 들어 있지 않아 초경량 에코백이었지만, 그 따뜻한 배려를 거부할 수 없어 가방을 무겁게 내려놓았어요.
공간은 크지 않았지만 아기자기한 느낌이 있었어요. 잘 꾸며놓은 편집 숍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전시 공간은 크게 두 군데로 나뉘어 있었는데요. 입구 쪽 첫 번째 공간은 손님을 응대하는 응접실 같았어요. 잘 맞아주신 덕분인지 밝고 산뜻하고 따뜻한 느낌의 공간이었어요. 전시는 ‘검정은 피어난다’라는 제목으로 박민아 작가님의 개인전이 진행되고 있었는데요. 작품은 검정색을 사용하여 그려진 고양이와 옷이 있었는데, 섬세한 것이 기술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란 생각을 했어요. 제 공간과 많은 돈이 있다면 저도 작품 밑에 스티커를 붙이고 싶었어요. 전시 유인물에 적혀 있기로는 작가님에게 검정색, 검은 고양이, 검은 옷은 남다른 의미가 있었는데요. 유인물의 내용을 일부 소개합니다.
<전시소개>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감정의 어둠을 일상의 한 조각으로 받아들이며, 그 곁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내면을 바라보는 조용한 마주함이 해방감, 자유로움 그리고 감정의 시원함으로 이어지길 개다합니다.
<작가 박민아> 그리는 과정에서 내면의 이야기를 찾아가고, 그 흐름을 그림과 책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작가노트> 오랜 시간 검정으로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처음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조용히 담아두기 위한 방식이었습니다. (중략) 검정은 흔히 감추는 색으로 여겨지지만 저에게 검정은 오히려 자신을 드러내고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길이었습니다.
뒤에서 카메라 촬영음이 들렸어요. 방문 전에 본 담 갤러리 블로그와 작가님 인스타에서 본 작품 구경하는 사람의 뒷모습 사진이 떠올랐어요. 저를 찍은 게 아닐 수도 있지만 신경이 조금 날카로워졌어요. 전에 다른 갤러리에서, 바로 최근에는 새로 오픈한 식당에서 사진촬영으로 좋지 않은 경험을 했었거든요. 그러다 저도 허락받지 않고 갤러리 외관 사진을 찍고 들어온 것이 생각났어요. 허가를 받아야하는 사진촬영,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사진촬영의 경계는 무엇일까요? 각자만의 기준을 갖되, 상대를 불쾌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제 경우에 적용할 원칙을 정리해봤어요. ① 외부는 로드뷰에도 찍히니까 허가를 생략한다. ② 내부는 촬영 시 동의를 구한다. ③ 공간을 촬영할 때 사람이 함께 촬영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④ 공간을 촬영할 때 부득이하게 사람이 함께 촬영되는 경우, 외부에 공개할 때 그 얼굴을 특정할 수 없도록 후처리한다. ⑤ 굳이 사람을 촬영하고자 한다면 촬영 전 동의를 구한다.
두 번째 공간은 서재 같았어요. 서재로 가는 통로는 좁고 어두워, 정말 내밀한 공간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일부러 그런 구조로 구성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중앙의 가벽으로 나눠놓은 공간을 통과하며 집중력과 기대감을 높이게 되었어요. 안쪽 공간은 작가님의 작업공간으로 느껴질 수 있게 도구, 메모장, 작품노트 등이 있었어요. 첫 번째 공간의 작품이 고양이와 옷으로 구성되어 외면의 느낌이라면, 두 번째 공간의 작품은 감정이 드러나는 얼굴 그림이어서 전시소개에 있는 것처럼 내면을 저와 마주하는 느낌이었어요. 최근에 하고 있는 고민으로 저와 좀 더 친해지기를 하고 있는데, 저는 저의 다양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다 마주하고 있으니 뭐 제법 나쁘지 않은 삶이라 생각했어요.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 두 가지는 작가님의 글 메모와 글씨였어요. 벽면에는 작가님의 작품을 대하는 생각이 담긴 글이 적혀있었고, 노트에는 영감을 주는 글귀들이 적혀있었는데요. 이해못할 감정선이 아닌 의식의 흐름을 따를 수 있어 제게는 친절하게 느껴지고 더 와닿아서 좋았어요. 제가 어찌 감히 다른 사람의 세계를 함부로 파악하고 이해하겠냐마는, 작가님의 세계에서 지성을 토대로 감성을 표현하는 인간미를 느낄 수 있어 더욱 좋았어요. 글씨가 좋았던 이유는 글씨를 매우 잘 쓰셔서인데요. 메모니까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글씨가 예쁘기가 힘들잖아요. 제 경우에는 노력해서 쓰는 글씨와 편하게 쓰는 글씨의 차이가 몹시 크기도 하고요. 몇 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볼게요. ① 노력해서 쓴 글씨가 아니고, 대충 날려 쓴 글씨다. :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오면 날려 쓴 글씨도 저렇게 잘 쓰실 수 있는 겁니까. 대단하십니다. ② 전시에 있는 글씨는 노력해서 쓴 글씨이다. : 전시라는 콘텐츠에 맞게 엔터테이먼트 요소가 몹시 훌륭하네요. 역시 대단하십니다.
제게는 정말 만족스러운 전시였어요. 최근에 제게 이렇게 완성도 있는 무언가가 있었나 싶었어요. 담 갤러리의 공간 구성과 전시의 주제가 잘 어우러져서 개연성 있게 잘 짜인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한 기분이었어요. 전시에 몰입할 수 있게 전반적인 전시 기획이 정말 성의 있게 잘되었다고 생각했고요. 작품 자체도 이후가 더 기대되는 정말 수준 높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해요. 다음에 담 갤러리에서 다른 전시를 열 때, 소식을 알 수 있다면 박민아 작가님이 다른 곳에서 새로운 전시를 할 때 꼭 다시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생겨 좋아요. 우리 동네라 인식하지 않은 곳인데 이제는 우리 동네라고 생각하려고요. 신길동에 담 갤러리를 시작으로 더 많은 문화공간이 생기길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합니다. 고맙습니다.
▶ 함께 소개하는 것 1. 담 갤러리 블로그 : https://blog.naver.com/prologue/PrologueList.naver?blogId=dam_gallery&skinType=&skinId=&from=menu&userSelectMenu=true 2. 담 갤러리 블로그 ‘검정은 피어난다’ 전시설명 : https://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dam_gallery&logNo=223904284901&parentCategoryNo=&categoryNo=6&viewDate=&isShowPopularPosts=false&from=postView 3. 박민아 작가님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mina127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