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ncy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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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죽음2012-06-08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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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처음으로 인식한 죽음은 05년 여름 언젠가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토끼의 울음소리로 남아있다. 이미 죽은 생선의 아가미나 손질되고 깨끗이 씻긴 돼지의 심장 따위를 관찰하다가, 직접 살아있는 무언가를 해부한다는 사실에 매우 들떠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막상 토끼를 마취하는 과정에서 그가 심히 괴로워하며 단 한번도 들어본적 없었던 우는 소리를 내는 것에 나와 내 친구는 조금 겁에 질려 선생님께 그만하면 안 되냐 물었고 선생님은 너희들이 하고싶어했기 때문에 시작한 것이며 책임질 수 없으면 하자는 말을 하지 말았어야지 라고 한마디 하셨던 것 같다. 어쨌든 우리 둘이 떠는 사이 두살 많은 다른 학생이 마취 끝에 죽어버린 토끼를 들고 방문을 열었고 그 이후로는 별 죄책감 없이 사지를 고정하고 가위로 가죽을 자르고 메스로 복막을 긋고 장기 이것저것을 관찰하다가 목적이었던 신장을 떼어냈다. 그 과정에서 동맥을 건드리는 바람에 확 몰려왔던 피냄새는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고나서 한 2년정도, 1년인가, 꽤 많은 수의 동물들을 해부한다는 명목하에 참 많이도 죽였던 것 같다. (개와 새를 해부할 기회도 있었는데 그건 감당하기 힘들다고 거절한게 이제와 생각해보면 참 다행이다.) 한번은 선생님이 병든 햄스터 한 마리와 멀쩡한 한 마리를 데리고 왔었는데, 어차피 아픈 애 오래 살지도 못 할거 해부하자고 졸랐고 다른 애도 혼자 심심해서 어찌 살겠냐며 결국 둘 다 해부했었다. 햄스터들의 간을 분리해서 저울위에 올려 간 무게가 전체 무게의 70%정도를 차지한다는걸 확인하고 시체와 간을 그냥 그대로 둔 채 교실 저쪽에 가서 다른 실험을 하고 놀았던 것 같다. 선생님이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 야." 라고 말했고 그 말에 무언가 죄책감 따위의 것이 들기 보단 화학 실험도 하고나서 나중에 정리하는데 꼭 지금 해야하나 라는 생각을 했던 걸 보면, 그 이후로 해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생명을 죽였다는 것에 반성해서라기보다는 할 기회가 없어서 였던 것 같다. 해부는 그후로도 한동안 나에게 별 감흥거리는 아닌, 흥미로웠긴 한데 그렇게 강렬한 기억은 아닌 일들이었다. 그시점의 나는 할아버지의 죽음에도 매우 둔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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