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프랑수아 밀레 [봄]
현실 도피 경향 [tendency to escape from reality] [심리] 1. 현실을 직시하고 인식해 보아서 자아의 정체감을 가지고 어렵게 될 때 강한 좌절이나 갈등이 개제된 자기개념과 현실과의 부적합한 상황에서 생기는 도피경향이다. 등교거부나 자폐적 행동 혹은 공상의 몰입, 백일몽, 망상의 도피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와 같이 극단적인 경우 외에 취미나 도박에 빠지거나, 권위적·복종적이 되는 경향은 다분히 현실의 인식을 성립시키지 않겠다는 동기가 작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 사회복지학사전, 이철수 외 공저, 2009
정신과 의사인 하지현 교수님의 강연을 들었던적이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을 전공하시고 [심야치유식당] 이라는 책을 쓰신 분인데요. 강연 내용은 아둥바둥 너무나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네들에게 지금도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으니 조금은 여유를 가지면 어떨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심야치유식당]은 8명의 환자들 이야기입니다. 정신병까지는 아니지만 사는데 지장이 있을 정도인데, 이 환자들을 정신과 교수가 치료해 준다는 내용입니다. 첫번째 환자는 너무나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에요. 끝없이 성실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불면증에 걸렸습니다. 두번째 환자는 성취감에 중독되어 섭식 장애에 걸리신 분 이야기이고 세번째 환자는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환자 이야기입니다. 그리고는 징크스로 고생하는 분, 너무 일만 해서 공황장애 걸리신분, 천재 뮤지션인데 영업맨이 되신 분, 자신보다 타인에게 포커스를 맞춰서 삶을 피곤하게 사는 분의 이야기가 나와요. 마지막은 소위 ‘직장인 사춘기’라고, 회사는 다니기 싫은데 그렇다고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은 아니고, 자기 사업을 할 정도로 아이디어와 배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이 회사는 아닌 것 같은데 당장 그만 둘 수 없으니 월급날만 기다려질 뿐이고...... 이런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전체적으로는 강연내용처럼 “당신의 문제는 너무나 열심히 산다는 것이다.” 입니다.
동감이 되더라구요. 저희는 너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학점에 충실하기 위해 학교는 물론 방학만 되면 토익, 토플학원에 인턴 경험도 쌓아야 하고 봉사활동도 해야하죠. 놀기도 놀아야 하구요.
강연이 끝나고 질문 시간에 한 여학생이 교수님께 묻더군요.
“교수님, 저는 지금 3학년인데... 꿈이 의사가 되는 거긴 해요. 그런데 저는 경영학도거든요?. 지금 제가 제 꿈인 의사가 되려면 정말 열심히, 피터지게 해도 될까 말까한데 교수님께서는 지금도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으니 쉬라는 말씀이신가요?”
하지현 교수님은 대답하셨죠.
“제 생각은 그래요. 충분히 쉬어가면서 하셔야 합니다. 그게 일종의 정신병으로 발전하거든요.” 여학생은 대답했습니다.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나요? 제 꿈을 이루는 것,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냥 꿈일 뿐이죠.”
현실이라. 현실. 제가 4학년이라 그런지 요사이 현실이라는 단어를 많이 듣게 됩니다. 일,이학년 때랑 달리 제 친구들의 희망 진로는 현실적입니다. 현실적으로 취업이 가능한 직장에 들어가거나, 현실적으로 미래 보장이 되는 안전한, 리스크가 없는 직업을 희망하고 있죠. 사실 고등학생일때 제 꿈은 아인슈타인 같은 위대한 물리학자가 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수능을 치고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 원서를 쓸 때 선생님들과 부모님 그리고 친구들과 진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결국 제가 지원한 과는 현실적으로 취업이 잘 된다는 공대였습니다. 한국의 과학자는 미래도 없고 굶어죽기 쉽다고 그러더라구요. 현실도피가 아니라 현실로 도피한거죠. 제 이상과 꿈이 채 날개를 펴 보기도 전에 현실로 도망왔습니다. 이상을 펴기에는 용기가 필요했고 저는 그러지 못했었습니다.
미국의 70년대 전후에는 현실 도피증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답니다. 소위 피터팬 증후군이라 불리는, 어른이 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어린아이같은 어른이 많이 등장하던 시기였다는군요. 당시의 불안했던 경제 상황과 인간가치의 하락이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도피 경향을 지니게 했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이상 작가님의 날개를 읽어보면 현실도피경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두려워 도망치는 것처럼, 지금 우리는 꿈을 향한 길의 험함이 두려워 현실로 도망쳐 버립니다. 그리고는 정말 열심히, 열심히 살아가지요.
제 후배 한명은 자동차 디자인을 무척이나 하고 싶어해요. 그래서 우리 학과에 왔다는데 아쉽게도 우리 학과는 자동차에 대해 공학적으로 배울 뿐이지 디자인의 'ㄷ'자도 배우지 않는 곳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대학을 그만두고 다른 대학을 갈려고 하지는 않지요. 현실적으로 어렵잖아요. 그 후배와 함께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요새 자기 이상을 향해 날갯짓 하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라는 질문이 나왔죠. 찾기 힘들더군요. (사실 안철수 씨 이야기를 했어요. 의사였는데 IT 기업가로 변신했지요. 분명 의사 그만 둔다고 했을때 주변에 "미쳤냐?" 소리 따갑도록 들었을 겁니다. IT 에 꿈이 있어서 안정적인 의사를 그만 두고 기업가로 변신한 것이지만...... 지금은 또 다른 변신을 준비하고 계시기에 IT 가 꿈은 아니었나봐요.)
주변에 자신의 꿈과 이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이 줄어들고 있어요. ‘날개’ 소설의 주인공처럼, 우리도 오늘은 없는 인공의 날개를 돋아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 거릴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정말로 행복해 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열정을 바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락과 사치가 삶의 핵심 요건인 것처럼 생각한다. - 찰스 킹슬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