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꾸벅꾸벅 졸고만 있다. 하필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아 강사님과 눈을 마주치고 있다. 그리고 또 하염없이 꾸벅꾸벅 졸고만 있다. 쉬는 시간이 되니, 다들 맨 앞에서 왜 그리 졸아대냐고 구박하고 있다. 나도 모른다. 연휴동안 너무 잘 쉬어서 그런가 출근이 영 익숙치 않다. 그렇게 어떻게든 5시까지 버티고 난 칼퇴근을 한다. 와, 진짜 수습기간이 끝나면 다신 칼퇴근을 맛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지금 하루하루를 소중히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몸과 마음이 너무도 지쳐 집으로 돌아가는 길마저 너무 힘들다. 이대로 그냥 순간이동이나 했으면 싶다. 하지만 집으로 곧장 돌아갈 수 없다. 옷을 사야 한다. 비지니스 캐주얼을 입고 오란다. 아 이런, 다음 주 연수 때에 필요하단다. 그런데 나는 면바지, 가디건 아무 것도 없잖어. 그래서 옷을 사야만 했다. 동기 형과 잠실 롯데백화점에 갔다. 본인이 봐둔 멋드러진 바지가 있다고 했다. 없었다. 왜 하필 그 매장에 그 날에 없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모든 것이 귀찮아졌다. 목적을 상실하자 더 이상 백화점을 방황하기 싫었다. 대충 저녁을 때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와, 드디어 집이다! 오늘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죽은듯이 잠만 자야지. 아, 그전에 인터넷이나 조금 해볼까. 간만에 놀판 홈페이지를 방문해보자. 어라, 정모 공지가 있네? 1월 27일 금요일.... 은 오늘이네, 이런! 하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기차는 잡을 수가 없는 법. 떠나버린 기차는 기차고 일단 나는 잠이나 자자며, 침대 위에 누웠다. 그리고 제대로 보지 못한 지난 주 무한도전을 틀었다. 꽤나 재밌다며 낄낄대는 와중에 왠 연락이 온다.
그리고 난 술을 마시고 있다. 자리에는 두 형들이 함께 하고 있다. 한번 마시기 시작하면 최소 새벽 4시까지 마셔대는 하는 사람들이다. 지금은 나와 한바탕 말싸움이 벌어졌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야기이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서태지를 아주 좋아했다. 저녁 노을이 질 무렵, 집 옥상에서 그들의 회오리춤을 따라하곤 했다. 한 형은 웃기지 말란다. 그 나이에 연예인을 열렬히 좋아해서 춤을 따라하는 게 말이 되냐고 말이다.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내 나이때 무얼 알고 그리할 수 있냐고 공격이 들어온다. 낸들 어떻게 아나, 내 기억이 이리도 생생한 걸...
그렇게 티격태격 아웅다웅 즐거웁게 술을 마시다 보니, 어느새 새벽 4시. 운명의 시간이다. 이 시간을 넘기고 계속 마셔댄다면, 나는 아침해를 볼 지도 모른다. 집에 가야만 한다. 나는 얼른 쉬고만 싶다. 온갖 핑계를 다 대가며 내가 집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설파했다. 잘 먹히지 않는다. 졸려 죽겠다는 표정으로 이제 그만 저를 놓아주십쇼 하자, 간신히 오늘은 여기까지라는 만족스러운 반응이 돌아왔다.
아, 드디어 오늘 하루가 끝났다. 기나긴 하루였다. 졸립고 피곤에 쩔은 하루였다. 소주와 맥주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넣은 음료에 거나하게 취한 하루였다. 침대에 누워 잠이 들 때쯤에 문득 생각이 났다. 오늘 놀판의 정모는 어땠을까? 재미와 귀여움을 담당하는 내가 없어서 영 어색하진 않았을지...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그 걱정은 그리 오래 할 수 없었다. 아마도 내가 금방 곯아떨어졌기 때문이겠지.
잠결에 다음 놀판 정모에는 꼭 참석해야겠다는 다짐을 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