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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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하수가 우릴 기다리고 있어요.2012-04-0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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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살 때였습니다. 학교가 가기 싫어서 밍기적밍기적거리는데 인간극장이 하고 있었어요.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납니다. 기억하는 것만 적어보자면, 굉장히 똑똑한 부부가 서울생활을 다 접고 귀농을 했어요. 둘 다 한의대를 나오셨는데 서울 생활에 싫증을 내시곤, 시골로 들어가셔서 그 곳에서 조용히 작게 한의원을 꾸리시는 내용이었죠. 집을 직접 지으시는 도중 남편 분이 톱이라던가 이것저것을 많이 구입하셨어요. 그걸 보고 안그래도 수입이 적어서 살림이 빠뜻한데 굳이 그런 장비들을 산다며 아내 분이 남편 분을 막 타박했어요. 해가 저물고, 아주 깜깜한 밤이었는 아내 분이 가계부를 보며 속상해하자, 남편 분이 슬그머니 아내 분의 손을 잡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은하수가 우릴 기다리고 있어요. "

 

 

 남자분들의 원성이 귀에 맴맴 돕니다. 하지만 전 그 장면이 정말로 너무 좋았어요. 아내 분은 어의가 없다며 너털웃음을 지으셨지만, 이내 남편분의 손을 꼭 잡고 산책을 나가셨습니다. 그 밤길 속에서 부부는 도란도란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방송엔 그 분들의 뒷모습으로 엔딩이 되었구요. 화가 난 아내에게 한 마디 말을 건내며, 손을 꼭 잡고 밤길을 산책하는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찡 났답니다. 그땐 연애가 너무 하고 싶어 안달난 상태였기 때문일까요. 아니요. 글쎄요. 제가 그때 받은 감정을 글로 설명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지만, 그랬습니다. 사실 별거 아니잖아요. 욕심없는 부부의 모습에, 아내의 투덜거림을 꼭 안아주는 남편 분의 모습에, 남편 분이 내민 손을 꼭 잡아주는 아내의 모습 모두 따뜻했습니다.

 

 3년이 지나고 이따금 떠올리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사는 게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요. 사실 내 욕심만 줄이고, 타인의 시선을 극복한다면 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합니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소박하게 살고 싶다가도, 타인의 시선에 늘 바둥바둥하는 제 모습을 보면, 또 돈 때문에 답답할 때나 사고 싶은 게 너무 많을 때나. 지금 내가 너무 배부르게 살고 있어서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쪼록 시작이 또 길어져 버렸네요. 다름이 아니오라 아침고요 수목원은 제게 저 부부의 모습을 떠올리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놀판분들이랑 함께 다녀오게 되었네요. 저는 그곳이 좀 더 큰 동산인 줄 알았더니, 꼭 그런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무척이나 좋았습니다. 파란 하늘에, 따뜻한 햇살에 좋은 사람들까지.

 

 

 요즘 사람들의 온기가 그리웠어요. 혼자 다니는 게 편하다며 혼자 잘난척 하면서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 사람들과 어울리지를 않았거든요. 그땐, 다른 봉사동아리에 빠져있어서 그런 면도 컸지만 활동을 그만 두고 돌아보니 제게 학교인연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해서 요즘 학교를 다닐 때마다 종종 외로워 미칠 것 같았어요. 아침부터 저녁수업까지 늘 혼자 듣고, 늘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세상 다 산 애처럼 넋을 놓고 다녔거든요. 저희학교는 학생들이 수업이 끝나면 죄다 빠져나가버려 오후수업을 들을 땐 학교에 사람이 없거든요. 그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좋을 때가 있는데.. 게다가 생리날까지 겹쳐서 괜히 지하철 타다가도 울고, 수업듣다가도 울고, 혼자 생난리 부루스를 추고 다녔는데 이젠 많이 극복했습니다. 있는 애가 더 하신다며 타박하시겠지만, 하나라고 있는 애인은 저 보다 학년도 낮으면서 바쁘다고 데이트 한 번 하기 힘듭니다. 아무쪼록 승렬씨와 진영씨처럼 학교에 단짝 친구를 못 만든것은 제 인생에 있어 가장 크게 후회하는 부분이지만, 뭐 이미 지난 시간 돌릴 수 없으니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수업시간마다 맘에 드는 분께 들이대기도 하고 번호도 따고 그럽니다. (저는 여대에 다닙니다.)

 그렇게 조금씩 극뽁!을 외치는 도중이었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제대로 원기보충하고 돌아왔습니다. 사실 돌아보면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지만, 그저 서로를 까는 농담따먹기도, 음식준비도, 장보는 것도, 바베큐구이도, 시덥지 않은 게임들도 정말 다 좋았습니다. 평범했다면 평범했고, 조용했다면 조용한 엠티였지만 살이 꽉꽉 채워진 느낌입니다. 그래서 이 느낌을 잊지 않으려고 쌓여있는 과제들을 밀쳐두고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인생 뭐 있나요. 다 하루하루 즐겁게 살라고 있는거지. 저는 지금 매우 행복합니다. 진영씨가 또 신기해할 대목이시겠지만요.

 

 

 

 모두 좋은 사람들 같아요. 이렇게 이런 곳에서 만난 것도 신기한데, 인생에 있어 전혀 겹치지 않는 삶들을 공유한다는 것이 꽤 멋진 일이네요. 무척이나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겉으로는 평범했지만, 속으론 꽤 많은 위로를 받고 돌아갑니다.

 

 

 

" 휴가가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방금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사람이다. "

 

 

 

 정말로 그렇네요. 오늘 날씨가 좋아 너무 너무 놀러가고 싶어서 안달이 났더니, 엄마가 방금 놀러갔다온 애가 그런다며 미친애라고 한소리 하시네요. 다음 놀판의 여행 문구는 저 문구가 되길 바랍니다.

 

 

 

 

 

 

 

" 바다는 언제나 그런식이다.

때로운 유치한 감상과 또 때로는 해탈에 가까운 여유를 보여주는 곳

... "

 

 

 

 

 

 

 

 

 

이상 최총무였습니다. 꾸벅. 좋은 한 주 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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