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수업 시간에 이미지 평가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상에 대해 느낀 점을 이미지 평가서에 항목별로 체크를해서 해당자에게 돌려주는 것이었죠. 제 평가서 중에서 ‘친해지기 쉽다.’, ‘친해지기 어렵다.’ 두 항목에 비슷한 수로 체크되어 있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또, 얼마 전엔 오랜만에 만난 한 친구가 “너 많이 변했다.” 라고, 반대로 다른 한 친구는 “넌 어떻게 하나도 안변하고 그대로냐?” 라고 말하더군요.
사실 위와 같이 저를 바라보는 평가들로 인해 조금 놀랐고, 고민스러웠습니다. 사람마다 평가가 너무 극명하게 대조되어서 말이죠. 전부터 비슷한 일은 종종 있었지요. '혹시 내가 나에 대해 연출을 하고 있는 것인가?', '붉은 머리카락 색깔 등 외형의 문제인가?' 그런데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딱히 접근이 어려운 사람은 아니거든요. 왜냐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람들이 길을 묻고요, 도를 아느냐고 여러 번 붙잡히기도 하니까요.

(출처: 성철웅님 카메라)
에흠. 저 그 고민을 이제 끝내버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를 두고 평가하는 말 속에 더 이상 '나'는 없는 것 같다고 결론을 짓기로 했거든요. 단지, 한 사람의 '감정들'이고 '생각들'이라고 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남들이 저에 대해 정의 내리는 것에 관심 갖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그들의 문제인 것 같아서요.
그리고 속 시원하게 스스로 저에 대한 정의를 찾는 일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존재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위해 어떤 '생각'을 찾는 일은 안하려고요. 저에 대해 정의를 내리려할 때마다 제 자신에게 한계를 정하는 것 같아 답답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만 하고 알 필요가 있다는 믿음을 내려놓을 때, 정체성에 무슨 일이 일어나죠?! 그저 ‘나도 나를 모른다.’는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니까 안정적이고 투명한 상태가 된 느낌입니다. 생각으로 저 자신에 대해 정의하려고 노력했던 것보다 진정한 저 자신에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아마 자신을 정의를 내리는 것은 그만큼 제 자신을 생각 또는 언어 속에 가두는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래에 저는 저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또 특별히 무언가가, 누군가가 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완전히 놓아버렸다고 해야 할까요? 물론 고민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요, 최대한 해야 할 때와 하지 않아야 할 때를 분리해 놓으니 마음이 편해진 것 같아요. 이 글에서 제 생각이 오롯이 표현이 될런지 잘 모르겠지만 완전히 자기 자신일 때 저는 가장 자연스럽고, 자연발생적인 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미친 사람 같지만, 현재의 제가 너무 좋아요! 좋아 죽겠어요~!!! 12년 전에 ‘열두 번 해가 바뀐 뒤에 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생각한 것을 기억합니다. 제 모습이 엄청 궁금했거든요. 지금이 정말 ‘딱’이에요! 그저께는 친구한테 “너 행복해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솔직히 제가 행복한지, 불행한지 잘 모르겠지만, "요새 나 행복한 것 같아."고 대답했습니다. 시인, 오든의 말을 하나 인용하면서 이번 글을 마칩니다.
In times of joy, all of us wished we possessed a tail we could wag. ― W.H. Au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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