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수업에선 영화 역사에 대해 조금 배웠어요. 제 전공이 아니니 당연히 수박 겉핥기 식으로 배운 지식이죠. 아주 조금
그리고 어설프게 아는 것이 가장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한 이론을 배우다가 스친 단상이 있어서 갤러리에 좀 풀어볼까 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영화는
여러 개의 쇼트(촬영의 기본 단위, 한 번에 촬영한 장면)를 찍고 이어 붙인 것이죠. 편집은
‘단순한 쇼트의 결합이 아니라 쇼트와 쇼트가 충돌하여 제 3 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라 정의가 된답니다. 어웅~ 딱딱해요. 아무튼 이 편집의 개념을 이론으로 처음 정립시킨 사람이
소련의 영화감독이었던 ‘레프 쿨레쇼프 (Lev Kuleshov)’라고 해요.
쿨레쇼프는 편집에 따라 영화의 의미가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음을 주장하며 배우 이반 모주힌(Ivan Mosjoukine)을 데리고 실험을 합니다. 배우의 무표정한 얼굴을 찍은 필름에 다른 다양한 컷들, ‘스프’, ‘관’, ‘소녀’와 결합시켜 편집하고 의미 변화를 살피죠. 놀랍게도 똑같은
얼굴이 '스프' 다음에는 '배고픔'으로, '소녀' 다음에는 '욕정'으로, '관' 다음에는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영상이 아니라 표정이 모두 똑같아 보이는군요! ㅋㅋ 에헴;)
결론적으로 쿨레쇼프는 쇼트의 전후 각 상황, 맥락에 따라 사람의
심리적 혹은 감정적 표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더 나아가서는 존재하지 않는 감정까지도 창조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아마 분리된 이미지에서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본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여기서 몇 년 전에 보았던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羅生門; 나생문)을
가져와 함께 엮어 보고 싶습니다. 작품성도 높다고 하고 영화사적으로도 의의가 있는 영화라고 하는데, 간략히
소개하자면 한 마을에 살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사실에 대해 인물마다 진술이 모두 다 다릅니다. 사회과학에선 기억의 주관성,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하는 것을 ‘라쇼몽 효과’라고 부른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영화가 말하고 싶은 바는 사람마다 얼마든지 보고, 듣고, 느끼고, 해석하는데
차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뭐, 이렇게 쭉 풀어놓았지만 스친 단상, 제가 말해보고
싶은 바는 아주 간단합니다. ‘쿨레쇼프 이론’과 ‘라쇼몽 효과’를 우리 삶의 인간관계에도 적용시켜보면 어떨까입니다.
각 개인은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자아이고, 개개의 세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만의 상대적인 진실과 진리를 무의식적으로 구성해가고 있지요. 그치만 또 수많은 타인과 함께 살아가고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교류하면서 세상이 재구성되기도 합니다. 그러한 관계 맺음과 교류 속에서 개인이 스스로의 주관적인 편집에 따라 타인을 판단하는 것을 한번쯤 재고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타인을 판단하는 기준이 전형적인 자기 중심적 프레임에 빠져 있는, 어떻게 보면 꽤나 이기적인 해석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컨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상대 인물의 표정 위로 새겨 넣는 것처럼 마음이 가는 대로, 제 방식대로만 편집, 정리, 해석을 해버리는 듯해서 말입니다. 으흠, 가장 피해야할 태도는 단번에 읽어 단정지으려 하는 것. 항상 경계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