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모르세요?"
구멍가게에 주전부리를 사러 나갔는데 누군가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평소 얼굴을 정확하게 잘 기억하는 편이 아니라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그 때마다 기억해내지 못해 연신 미안해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곤 합니다. 어쨌든 역시 이번에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미안한데 누군지 잘 모르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윽고 상대는 당황하더니 "선생님, 과외..." 아하! 그제서야 생각이 났습니다. 몇 년 전 공부를 봐주었던 친구!

아시겠지만 대학에서 교직이수라고 하는 절차를 밟으면 교육자가 될 수 있죠. 그런데 저는 일찍이 제 길이 아니라고 마음먹고 그 근처에 갈 생각일랑 하지도 않았습니다. 선생이라고 불릴 만한 역량이, 깜냥이 되지 않는 저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입니다. 저와 같은 녀석이 어쭙잖게 선생질을 했다간 한창 자라는 아이들의 인생을 망쳐놓진 않을까하는 걱정도 있었죠. 하나 더 이유를 보태자면 그 중 선생이라는 직업이 제게 매력 없게 느껴진 것도 컸습니다. 왜냐하면 학창시절부터 제가 보아온 바에 따라, 교사의 삶이 아주 지리멸렬하다는 생각을 자주 떠올리곤 했었습니다. (행여 이런 저의 모자란, 설익은 생각 때문에 불쾌한 기분이 드셨다면 죄송합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몇 푼 되지는 않지만 용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돈 몇 푼에 제가 가진 형편없는 지식 몇 조각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준다는 행위 자체에 대한 심한 불편함과 죄책감이 굉장히 컸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풋내기가 선생이랍시고 그들에게 알려주는 몇 마디가, 대가로 받는 돈만큼 가치가 있는 지식도 아니라고 여겼으니 말입니다. 과거, 우리 사회에서는 조금이라도 배움이 있는 대학생을 ‘지식인’이라고 칭했다지만 지금은 전 국민의 학사화에다가 전공 지식은 너무나 부족하여 무언가를 전공했다고 떳떳하게 말하기에 민망한 시대를 살고 있지 않나요. 아무튼 제가 스스로 씌운 죄책감의 굴레를 조금이나마 벗어내고 싶어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 몇 명도 무료로 공부를 봐 주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껏 저의 짧디 짧은 스물다섯 인생에도 저를 선생이라 부르고 따라 준 아이들이 생겼습니다. 처음부터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겠다는 거창한 신조나 마음가짐을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그치만 공부 가르치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그 친구들에게 좋은 언니, 누나가 되고 싶은 마음은 정말 컸습니다.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또 그들보다 제가 몇 년 아주 조금 더 세상 공기를 쐬었다는 셈 쳐 나름의 조언을 해줄 수도 있을 테니까요. 더해서 정말 많이 부족한 저이지만 제가 아는 괜찮은 영화, 책, 음악 등을 추천해주고, 사회의 여러 시선들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러한 사고와 습관들이 인생관이나 가치관 형성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에 와서 보면 그러한 것들이 제가 학창시절에 가장 목말라했던 것이고, 또 살아가는 데에 중요한 것들 중 하나라고 믿습니다. 그들에게 이런 저의 마음이 잘 전해졌는지 알 길은 없네요.

하지만 결론적으론 저의 욕심이 너무 과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일단 학교에서 눈에 보이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 대학 입시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 그들에게 닥친 가장 절실하고, 최우선적인 목표이니깐 말이죠. 그들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게 공부를 열심히 봐주었습니다. 성적이 잘 나오면 잘했다고 칭찬을 듬뿍 해주기도 했습니다.
"어머, 이게 얼마만이야, 정말 예쁜 아가씨가 다 되었네."
"에이~ 선생님, 저도 이제 대학생이라구요."
교복입은 앳된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화장을 곱게 한 예쁜 숙녀가 되어서 제 앞에 서 있더군요.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짧게 대화를 나누고 다음에 커피 한잔하자며 말하고는 헤어졌습니다. 사실, 연락처 교환도 없었으니 인사치레와 같은 말을 한 거죠.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선뜻 연락처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들의 인생에서 저는 그냥 편안한 옆집 언니, 누나로 스쳐 지나갔으면 하는 작은 바람뿐이니까요. 정말 딱 거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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