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딩동”
부엌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시던 엄마는 젖은 손을 수건에 닦으시곤
현관 쪽으로 향합니다.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구세요?”
대답이 없습니다. 맛있는 저녁 밥을 기다리며 팔자 좋게 방에서 뒹굴거리고 있는 저, 귀를 쫑긋 세웁니다. 재차 누구냐고 묻는 엄마의 약간 긴장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상하게 엄습해 온 위험을 직감해 빠르게 뛰어나갔습니다.
께름칙한 뉴스를 접하게 되는 험한 세상을 살고 있고, 또 제가 사는 아파트에 외부인 출입이 꽤 잦기도 합니다. '새해 맞아 복조리
하나만 사주세요.', '뿅뿅우유를 드시면 접이식 자전거를 드려요.', '예수믿고 구원받아 천국가세요.', '빨간 학습지입니다.' 등등.. 하도 여러 낯선 사람들이 벨을 누르다 보니 귀찮아진 저는 보통 숨을 죽이고, 집에 사람이 없는 척을 합니다. 그러면 잠시 뒤, 다른 집의 벨소리가 멀찌감치 들려옵니다. 그런데 엄마는 이 밤에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인터폰으로 확인도 안하고 다짜고짜 문을 열어주시려 하나 봅니다. 저는
엄마에게 눈으로 찡긋찡긋 신호를 보내고 손가락으론 엑스표시를 만들고 난리가 났습니다. 다급하게 입 모양으로
소리는 내지 않고 ‘누군데? 열어주지마.’라고 뻐끔뻐끔거리자마자, 엄만 작은 유리 구멍으로 밖을 보시더니
이내 문고리에 손을 댔고 자물쇠가 덜컥 돌아갑니다. 동시에 제 심장도 덜컥, 경직되어 현관 앞 자리에서 발이 멈췄습니다.
아뿔싸, 어쩌면 좋아! 모르는 얼굴의 낯선 중년 남자가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여자만 있는 걸 알고, 무슨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지? 순식간에 머리 속에선 온갖 시뮬레이션이 휙휙 돌아갑니다. 발로 찰까? 신발을 던질까? 소리를 지를까?
“안녕하세요. 신문 배달하는 사람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애
아빠가 신문값을 안 드렸나 보네요?” “아아, 아닙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신문 배달을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감사해서 인사드리려고 왔습니다.”
아부지가 신문 배달 아저씨께 담뱃값이라도 하시라며 신문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구독비를 챙겨드렸던 모양입니다.
“아휴, 그러세요.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애기 엄마가 아파서… ”
추운 날씨 때문에 빨개진 손엔 박카스
한 박스를 담은 비닐 봉지가 들려있습니다. 쭈뼛쭈뼛하며 봉지를 건네십니다. 엄마는 몇 번이나 사양을 하시다가 자꾸 더 그러면 아저씨의 성의에 실례가 된다고 생각을 하셨는지 받으셨습니다.
저, 어쩌면 좋습니까. 뒤에서 휘둥그레진 눈으로 벙찐 표정을 하곤 있습니다. 두 분이 짧은
대화를 나누시고는 나중에 또 뵙자는 인사를 하며 헤어집니다. 현관 밖 복도에 맨 발로 뛰쳐나가,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향해 안녕히 가시라고 고개를 몇 번이나
꾸벅였습니다. 언젠가 찬 새벽, 집에 들어오는 길에 경비실 옆에서 배달 차를 기다리는 한 아저씨를 본 적이 있습니다. 추위를 잊어보려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는 그 분의
모습이 스쳐 지나갑니다.
사람과의 진정한 소통을 하고 싶네, 마네
지껄이는 제가 창피합니다. 집 문 밖 누군가를 꺼리고 오해하면서 문 손잡이를 꽉 잡고 있는 저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요. 아, 정말 괴롭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조금 전 제게 있었던 일을 끄적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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