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진영입니다. 놀판을 하면서 무언가를 비판하는 글을 지금까지 두 번 올려봤습니다. 처음 글은 사기꾼 같은 지식인을 비판하는 글이었습니다. ‘잘난 척 한다.’, ‘네까짓 게 뭔데 사회적 유명 인사를 비판하는 것이냐.’라는 비판에 한동안 시달려야 했습니다. 결국에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데 들이는 힘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용한다면 더 좋은 효과를 볼 것이라는 임선영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글을 내렸지요. 그리고 두 번째로 바로 며칠 전, 정모 후기를 통해 놀판을 하면서 만난 곤란한 사람들의 경우를 열거하며 그들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바로 피드백이 오더군요. 지나치게 공격적인 글이라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좀 더 신중했으면 좋겠다고요. 충고를 해주시는 분들에 대한 고마움과 괜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글을 내리고는 지금까지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무엇이 옳은 것일까요, 그리고 제가 따라야할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분께 ‘위대한 영혼’이라 불리는 간디의 일화를 하나 말씀드릴게요. 어느 날 한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간디를 찾아갔습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간디에게 자신의 아이가 더 이상 사탕을 먹지 않도록 잘 타일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간디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한 달 후에 다시 찾아오라며 그들을 돌려보냈습니다. 한 달 후에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다시 간디를 찾아오자 그제야 간디는 아이에게 “아이야, 사탕을 너무 많이 먹으면 몸에 해로우니 이제는 사탕을 먹지 말거라.”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이의 어머니는 이러한 말이라면 한 달 전에도 해줄 수 있지 않았느냐고 묻자 간디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사실 한 달 전에는 저도 사탕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사탕을 먹지 말라고 말을 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사탕을 끊어야했고 그래서 시간이 좀 필요했습니다.” 이 일화를 통해서 우리는 간디의 언행일치의 삶을 엿볼 수 있습니다. 쉬이 가르치거나 비판하지 않고 모범을 보이고자 노력하는 간디의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있습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를 예수에게 데려와 법에는 간음한 여자는 돌로 치라고 되어 있는데 어떻게 해야겠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는 말합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결국 아무도 그 여자를 돌로 치지 못하고 떠나갔고 예수는 여자에게 다가가 말합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으아,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 어떤 비판도 할 수 없는 걸까요? 이러한 일화들을 가지고 생각해보면 제 자신도 부끄러운 점투성이인데 제가 감히 누군가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 인터넷 기사의 댓글을 통해서는 ‘그보다 못하면 까지 마라’라는 식의 논쟁을 많이 보게 됩니다. ‘정치인보다 정치를 못하면 정치인을 까지 마라.’, ‘운동선수보다 운동을 못하면 운동선수를 까지 마라.’, ‘가수보다 노래를 못하면 가수를 까지 마라.’라는 것이지요. 정말 그런가요? 저는 할 줄 아는 요리가 몇 안 되지만 맛있는 음식과 맛없는 음식은 구분할 줄 압니다. 다룰 줄 아는 악기가 많지는 않지만 좋은 연주와 나쁜 연주는 구분할 줄 압니다. 꼭 요리를 할 줄 알아야만 미식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꼭 악기를 다룰 줄 알아야 훌륭한 음악평론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아닌가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헷갈리네요. 아직도 고민 중이기는 합니다. 비판이 잘못이 아니라는 것에 이성적으로 완전히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저는 비판할 일이 있다면 감히 비판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께 몽테뉴의 말을 빌려 제 생각을 전합니다. ‘나는 그저 생각을 주고받으며 논의해보자는 것일 뿐이니, 어떤 소리도 충고로 받아들이지 말지어다. 누구라도 내 말을 믿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큰소리치지 못했으리라.’ 앞으로 제가 하는 비판은 그저 제 개인의 주장일 뿐임을 밝힙니다. 그런 만큼 여러분들의 어떠한 비판도 달게 받겠습니다. 저는 옳은 비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줄 아는 용기가 있어야겠지요. 당장은 욕을 먹을지라도 필요하다면 쓴 소리도 할 줄 알아야겠지요. 우리가 보통 비판이라고 했을 때의 문제는 비판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비판의 수위의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무조건적인 비판, 근거 없는 비판, 대안 없는 비판, 비판의 탈을 쓴 비난 등이 있겠네요. 이런 식의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가 결여된 비판을 조심하겠습니다. 절대로 쉬운 비판, 누군가를 향한 비판, 단기적인 효과를 위한 비판 따위는 하지 않겠습니다. 혹시 제가 그러지 못한다면 여러분들의 따끔한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휴, 아직도 고민이네요. 고맙습니다. 김진영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