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진영입니다. 어제가 제 생일이었습니다. 매해 생일이 되면 12시 ‘땡~’소리와 함께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축하한다는 문자와 전화가 빗발칩니다. 그런데 어느 샌가부터 이런 축하한다는 말이 그다지 기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신경써줌이 전혀 고맙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축하한다는 말이 그저 인사치레 같다는 기분이 들다보니 그렇습니다. 저들이 그저 타성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고나면 저는 또 저들에게 저들 듣고 싶은 말을 해야만 합니다. 마치 제가 앵무새가 된 것만 같은 이런 상황에 마음은 한없이 서글퍼집니다. 사람들은 ‘생일 축하해.’라는 말을 하면서 왜 그런 말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봤을까요? 으아, 이렇게 매해 권태로운 생일을 보내며 저에게는 작은 바람이 생겼습니다. 생일을 축하한다고 말함에 있어 조금은 진정성을 가져줬으면 하는 것이지요. 제 경우에는 올해 페이스북에 생일을 공개하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페이스북을 통해서는 축하한다는 말을 단 한마디도 듣지 못했네요. 작년에 공개해두었을 때와는 아주 다른 모습이지요. 이처럼 페이스북이나 싸이월드 따위에 생일이 공개되어 있지 않다면 축하한다는 말도 듣지 못하는 고작 그런 정도의 마음 말고, 제가 정말로 고마워 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마음이 어디 없을까요? 가령 저는 ‘생일 축하해.’라는 말보다 듣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은 그다지 공감이 안 되거든요. 일단은 생일이라고 해서 특별한 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이 끔찍한 세상에 태어나 이처럼 고통스럽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을 축하한다니요……. 축하보다는 오히려 위로가 걸맞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생일 축하해.’란 말 대신에 ‘너를 알게 돼서 기뻐. 잘 태어났어. 고맙다.’는 어떤가요? 이 끔직한 세상에서 제 존재가 누군가에게 기쁨이 된다면, 그리고 그렇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더 없이 기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생일날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어머니의 “진영아, 엄마는 네가 엄마 아들이라서 기뻐.”라는 말에 하루가 즐거웠던 것처럼요. 그래서 제 경우에는 정말 좋아하는 사람의 생일에는 이와 같은 말을 들려주곤 합니다. 물론 듣는 사람은 제 말이 엄청난 찬사라는 것을 전혀 모르겠지요? 어떤 사람들은 생일에는 축하를 받을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낳아주신 부모님께 고마워해야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글쎄요, 저는 이 말에도 그다지 공감이 안 됩니다. 어느 날인가 한 번은 저희 부모님께서도 이와 같은 말씀을 저에게 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 끔찍한 세상에 나를 낳은 것에 대해서 미안해해야하지 않느냐고 반문했지요. 그 이후로는 부모님께서는 다시는 이와 같은 말씀을 하지 않으십니다. 으에, 너무 패륜아 같나요? 비록 이 문제에 대한 생각은 이와 같지만 표현형은 이와 같지 않으니 혹시나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네요. 그래도 전 저와 같은 아들을 언제나 사랑해주시는 부모님께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쨌든 같은 이유로 저는 제 아이를 원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 누구보다 잘 키울 자신은 있지요. 하지만 이게 단지 제 생각일 뿐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아이의 생각은요? 아이에게는 어떠한 선택권도 주지 않고 제 마음대로 세상에 태어날 것을 강요할 자격이 과연 제게 있을까요? 아이를 낳는 것이 저를 위한 선택인지 아이를 위한 선택인지, 저는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으아, 올해 생일은 그냥 이렇게 보냅니다. 어렸을 적에는 마냥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어른이 되고부터는 나이를 먹는 것이 참으로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네요. 단순히 생활연령이 늘어나는 것이 싫은 게 아니라, 나이에 걸맞게 늘어나는 책임 때문에 어떻게 나이를 먹어가야 하는 것인지 늘 고민이 됩니다. 정말 잘 늙어가고 싶은데요. 잘 자라나고자 함은 모든 생명가진 것들의 본성이잖아요. 나무는 가지를 치면 잘 자라난다지만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잘 자라날까요? 그저 해가 거듭될수록 삶을 더 즐길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고맙습니다. 김진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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