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진영입니다. 이번 학기에 학교 수업시간을 통해서 논어(論語)를 읽고 있어요. 논어는 구성이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로 되어 있는데요. 이 때문에 보다 쉽게 읽을 수는 있지만 전후의 맥락을 모르면 오히려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렵기도 해요. 하지만 저희는 교수님의 친절한 설명이 있기 때문에 논어를 참 재밌게 읽을 수 (들을 수? ) 있어요. 마치 어린 시절에 할아버지가 재미난 전래동화를 들려주시던 것처럼요. 논어를 읽다보면 참 좋은 구절들을 많이 만납니다. 아무래도 제 삶의 목표가 사람냄새 물씬 풍기며 사는 것인지라 논어의 인본주의적인 구절들이 참 좋습니다. 서양철학에서 소크라테스가 자연에 대한 관심을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바꿔 놓았다면, 동양철학에서는 바로 공자가 그러했지요. 공자가 항상 관심을 가졌던 문제는 사람의 삶이었습니다. 季路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曰, “敢問死。” 曰, “未知生, 焉知死?” -「先進」 자로가 귀신을 섬기는 법을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능히 사람을 섬기지 못하면서 어찌 능히 귀신을 섬기겠느냐?” 자로가 말했다. “감히 죽음을 묻습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삶을 알지 못하면서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논어에 나오는 용어 중에 참 예뻐서 좋아하는 것들이 있어요. 사람 인(人)에 두 이(二)를 붙여 두 사람사이의 관계라 하여 사람다움을 말하는 인(仁)도 좋고, 가운데 중(中)에 마음 심(心)을 붙여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중심을 말하는 충(忠)도 좋고, 같을 여(如)에 마음 심(心)을 붙여 남의 마음과 같아지려는 배려의 마음인 서(恕)도 참 좋습니다. 정말 다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은 호학(好學), 배움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논어에서는 호학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우리가 왜 배움을 좋아해야하는지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우선 배움은 즐거운 일입니다. 논어의 첫 구절이 ‘배우고 때때로 이를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말인데요. 공자의 이러한 말처럼 배우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게다가 우리의 삶은 아는 만큼 재밌습니다. 우리에게 배움은 삶의 이치를 터득하기 위함이고, 그렇게 사유하는 순간에 가장 사람다움이 있지요.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인다는 말처럼 그렇게 우리는 삶에 대해 배움으로써 세상을 더욱 즐겁고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배움을 통해 현실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유학에서의 배움은 일종의 구원론적 의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공자가 살던 춘추 시대는 엄청나게 혼란한 시기였는데요. 공자는 이러한 난세를 타계하기 위한 방법으로 배움을 제시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는 것은 정말 굉장한 힘입니다. 책 속에는 우리의 인생 선배들이 고민한 내용들과 그에 따르는 해결책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읽음으로써 시대를 뛰어 넘는 보편적인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 것이고요. 요즘 다들 청춘이 힘들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배움을 통해서 진정한 위로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더불어 사는 삶 속에서는 개인에게는 마땅히 배워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현대사회는 개인이 개인으로서 독자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개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개인은 사회와 관계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때문에 개인의 지혜롭지 않음은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문제로 몰아넣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선 스스로에 대해 배우고, 주변 사람들에 대해 배우고, 세상에 대해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배움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스스로 돌이켜 배움을 좋아하냐고 한다면 감히 배움을 좋아한다고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실천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는 것일 겁니다. 좀 더 사람다움을 꿈꾸며 여러 공부를 하기 위해 이곳저곳에 기웃거리기도 했고, 나름의 철학을 완성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에 저는 조금도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 못합니다. 몇 달 전에 가졌던 생각들을 아직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취업준비에 쫓긴다는 핑계로 목표로 했던 배움의 행동들을 실천하고 있지 못합니다. 여태껏 저의 모습이 진정으로 배움을 좋아하는 것이 아닌 그저 지적허영심은 아니었는지 반성해봅니다. 배우지 않으면 일생이 나머지 공부가 될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을 되새기며 지금 논어와의 만남을 다시 배움에 정진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려고 합니다. 고맙습니다. 김진영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