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진영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조금은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은 늘 상처를 남깁니다. 내가 그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 또한 반드시 나를 사랑해야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그에게 헌신하는 만큼 보답 받고 싶은 것이 솔직한 사람 마음이지요. 그렇게 그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실망하는 마음도 비례하여 커집니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따뜻하게 하여 대해주어도 상대가 나의 기대에 부응해주지 못하고, 나의 기대가 그저 상대의 무책임함으로 돌아온다고 느껴질 때면 한 없이 서글퍼집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내가 바라는 바를 충족시켜주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들이 바라는 바만 충족시키는 데에 혈안이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나는 상처 받은 채 점점 사람에게 흥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렇다고 아예 기대를 하지 않을 수도 없는 건데요. 공성신퇴(攻成身退)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을 이루었으면 몸은 물러난다는 뜻으로 흔히 토사구팽으로 대변되는 한신과는 달리, 장량이 한고조 유방의 천하통일을 돕고도 스스로 물러나 화를 면했다는 것에서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는 말로 쓰입니다. 이 말은 원래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인데요. 공을 이루고 명예를 얻었을 때 욕심내지 않고 물러남으로써 그 공과 명예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공성신퇴의 교훈을 우리들 사람관계에서도 적용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공성신퇴, 바라는 게 있으니 실망도 있는 법, 바라는 게 있으니 욕구가 있고 욕심도 있는 법. 그러니 마음을 주고 나서는 이에 대해 무엇도 바라거나 기대하지 말 것. 하아, 무슨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아니고 말은 참 쉽지요. 
예전에 삼국지를 읽다가 만난 인상 깊은 구절이 있어요.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차피 사실 여부도 정확하지 않으니 기억나는 대로 말씀드릴게요. 유비와 초옹의 일화입니다. 유비가 하루는 강 근처를 걷고 있는데 강 건너편에서 한 할아버지가 유비를 불러 자신을 업고 강을 건너게 합니다. 유비는 건너편으로 가 할아버지를 모시고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오게 되고, 할아버지는 짐을 두고 왔으니 다시 자신을 업고 건너편으로 가서 짐을 가지고 오자고 합니다. 그래서 유비는 다시 할아버지를 업고 건너편으로 가서 짐을 챙겨서 돌아옵니다. 이 때 할아버지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으니 자신을 업고 다시 건너편으로 돌려보내달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이와 같은 상황이었으면 어떻게 하셨겠어요? 유비는 아무 말 없이 할아버지를 업고 다시 강 건너편으로 모셔다 드립니다. 결국 유비는 강을 다섯 번이나 왔다 갔다 하게 되었는데요. 이에 할아버지는 유비에게 왜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는지를 묻게 되고 이에 대한 유비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제가 인내하지 못하고 할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했다면 지난 수고마저 부질없게 되는 것이지만, 제가 할아버지의 부탁을 받아들임으로 해서 지난 수고에 지금의 수고까지 두 배로 더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람 관계는 원래 다 그런 거라고, 사람에게 기대도 실망도 함부로 하지 말라고, 그런 식으로 쉽게 관계를 망치려 하지 말라고, 그보다는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라고, 그만큼 자신에게나 남에게 충실한 적은 있었느냐고……. 흥, 이 무슨 “아부지이~ 돌 굴러 와유~” 같은 소리입니까. 사람들은 다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재단하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면서도 이율배반적으로 정작 본인은 다른 사람을 마음대로 재단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무슨 성인군자라도 되는 냥 이야기하지요. 참 솔직하지 못해요. 그렇게 적당한 노력과 그에 따른 적당한 인간관계, 저는 거부하렵니다. 보다 기대하고 보다 실망하려 합니다. 기대가 깨졌을 때의 실망감은 참 아프겠지만 다음을 기약하는 디딤돌이라 여기고 기운 내어 상처받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상처받고 아쉬워하는 속에서 성숙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이 든다면, 그렇게 제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다면 그때는 제 그릇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겠지요. 고맙습니다. 김진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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