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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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말 잘하는 사람들.2012-07-31 22:21
카테고리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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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 “古者言之不出, 恥躬之不逮也” -「里仁」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 사람들이 말을 내지 않은 것은, 몸소 행함이 말에 미치지 못할 것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김진영입니다.

 

 저는 제법 수다쟁이임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안 해 속을 모르겠다.”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들으면서도 말을 잘 하지 않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사귈 가치가 없는 사람을 가려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을 안 하면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제 생각을 추측해내는데, 재밌는 것이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그 방식이 아주 가관입니다. 제 예전 글 ‘책을 보는 이유(/xe/1660)’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저는 “책 좀 읽어라.”, “생각 좀 하고 살아라.”라는 등의 충고를 많이 받는데요. 세상에 어떤 잘난 사람이 있어 다른 사람에게 이런 충고를 함부로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말을 하는 사람보다 독서량은 물론 자존감 또한 월등하기에 그저 우습게만 느껴집니다. 이렇게 제 자신을 숨김으로써 그저 어리석은 잣대로 함부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못난 사람을 가려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에 크게 가치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은 굉장히 기분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에는 그것이 여태껏 큰 위안이 된 적이 없었고, 그보다는 스스로에게 납득할 수 있을 때에 만족감이 더욱 극에 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를 드러내는데 노력하기 보다는 스스로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때때로 사람들은 제게 “너 이런 것도 할 줄 알았어?”, “의외인데?”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저는 사람들이 저의 잘나고 포장된 모습이 아니라 다소 못났더라도 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다른 이유보다 우선적인 이유는 제 스스로의 말에 제 행동이 따르지 못하는 것이 싫기 때문입니다. 논어의 이인(里仁)편을 보면 “옛 사람들이 말을 내지 않은 것은, 몸소 행함이 말에 미치지 못할 것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예전에 한 번 지인에게 “너는 말뿐이야.”라는 평가를 받고 크게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어찌나 큰 충격이었던지 그 이후로는 말 자체를 잘 안하게 되고, 행동으로써 말을 대신할 수 있는 것에 다소 병적인 집착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러한 것들에 생각이 집중이 되다 보니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싫증이나, 스스로를 다잡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참 말만 번지르르하게 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나 놀판을 하면서 그런 사람들을 더욱 많이 만나게 된 것 같습니다. 놀판이란 이름을 통해 저와 만났던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제가 놀판의 이상에 대해서 말하면 하나같이 모두 박수치며 찬양합니다. “내가 꿈꾸던 모임이야.”, “나 그런 거 좋아해.”라고요. 처음에 이러한 말들을 들었을 때는 굉장히 신기하고 흥미로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로서는 감히 좋아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들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으니까요. 저는 다른 누군가에게 놀판을 설명하면서 “놀판을 통해 철학적인 성찰을 하고 싶어.”와 같이, 하고 싶은 것을 말해왔지 어떤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는 철학적인 성찰하는 거 좋아해.”, “나는 책 읽는 거 좋아해.”라며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반응으로 저를 한껏 기대감에 부풀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지금은요?

 

 좋아한다는 말은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면서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면 그것이 책을 좋아하는 것입니까? 책을 읽는다고 말함으로써 있어 보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요? 철학적 성찰을 좋아한다면서 자존감이 바닥이라면 그것이 철학적 성찰을 좋아하는 것입니까? 그렇게 해서 마음은 좀 나아지고 계신가요? 무엇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음을 뜻합니다. 어떤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려면 대상을 좋고 싫음으로 나눴을 때 적어도 좋아하는 쪽이 더 많아야겠지요. 그리고 좋아한다고 말하는 만큼 행동이 그에 맞게 따라야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그저 젠체하기를 좋아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지요.

 

 놀판의 이상에 공감하셔놓고는 말없이 떠나는 분들, 물론 놀판의 이상이 여러분들과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감해놓고는 그렇게 말없이 떠나신다는 것은 그만큼 여러분들의 공감이 진실되지 않았음을 방증하는 것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러기 전에 그런 실망스러운 언행을 하지 않는 것이 우선이지 않나 되묻고 싶습니다. 자신의 본래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포장해놓고서, 그런 괴리감에서 오는 배신감에 대해서는 모른 척 하라니요. 하다못해 우리는 과자봉지 하나를 사고도 과자를 산 게 아니라 질소를 샀다며 분노하는데 말이죠.

 

 페이스북이나 싸이월드에 넘쳐나는 수많은 거리의 시인들이나 거리의 철학자들처럼 스스로를 멋지게 포장해버리고는 쉬이 흡족해하고 위안을 삼을 거라면 달리 드릴말씀은 없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본인이 스스로의 잘난 맛으로 살겠다는데 제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거짓놀음을 놀판에서까지 하시겠다면 저로서는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거짓놀음은 다른 곳에서 하세요. 그런 행동은 놀판의 다른 분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조차 결여되어 있는 행동이라 생각지는 않으시나요? 저를 통해 놀판에 오신 분들이라면 저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조차 결여되어 있는 행동이라 생각지는 않으시나요?

 

 개인적인 마음으로는 말뿐인 달변가보다는 뜻이 깊은 눌변가가 놀판에 많아지기를 희망합니다. 그러한 분들의 놀판이고, 그러한 분들을 위한 놀판이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서 놀판에서는 지적 허영심이라는 본능을 지적 호기심으로 승화시킬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저 또한 그런 놀판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진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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