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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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내가 만나고 싶지 않은 여자친구.2012-09-30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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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내가 만나고 싶지 않은 여자친구.JPG (14.2KB)

 안녕하세요, 김진영입니다.

 

 존경하는 여성여러분, 이런 남자친구 어때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화장실 앞에서 내 가방을 들고 기다려주는 남자, 쇼핑을 따라와 힘들더라도 군소리 없이 옆에서 짐을 들어주는 남자, 김치 없이는 밥 못 먹으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파스타를 함께 먹어주는 남자, 내가 춥다고 말하면 말없이 자신의 겉옷을 벗어 덮어주는 남자, 내가 부르면 언제라도 친구들과 있을지언정 단숨에 달려오는 남자…….

 

 캬야~ 멋지네! 그런가요? 그렇다면 미안하지만 전 그쪽이 바라는 남자가 아니고, 다행히도 그쪽도 제가 바라는 여자가 아니네요.

 

 

내가 만나고 싶지 않은 여자친구.JPG

 

 

 전에 교양수업에서 한 교수님께 들은 버스에서의 이야기를 하나 소개할게요. 버스 안 자리에는 한 남자가 앉아있었고 옆에 빈자리에는 그 남자의 가방이 놓여 있었어요. 버스에는 사람이 가득했고 많은 사람이 서 있었지만 아무도 남자에게 가방이 놓여있는 자리에 대해 묻지 않았어요. 한국정서가 으레 그러하듯이 무슨 연고가 있을 것이라 여겼던 것이지요. 버스가 출발할 때쯤 되어 한 여자가 버스에 들어왔고, 자연스럽고 당연하게도 남자의 가방이 놓여 있던 자리에 앉았어요. 사실 그 여자는 남자와 연인 관계였고, 남자가 여자의 자리를 대신해서 맡아주고 있었던 것이지요.

 

 교수님 말씀이 끝날 때쯤엔 대부분의 학생이 부끄러움을 무릅쓴 남자의 헌신적인 사랑에 대해 감동하는 눈치였지만 제 생각은 많이 달랐어요. 두 남녀 모두 한심하다는 생각과 역시 사람은 끼리끼리 만난다는 생각을 했지요. 여자는 자신의 남자친구가 자신을 기다리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눈총을 받게끔 방치해뒀어요. 오직 자신이 편하게 자리에 앉을 것만을 생각해서요. 남자는 자신의 여자친구를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어있던 자리에 앉힘으로써 사람들의 눈총을 받게끔 만들었어요. 본인 스스로는 여자친구를 위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했겠지만요. 결국 여자도 남자도 자신밖에 모르는 행동을 하는 사람인 것이고, 그런 서로를 몰라보고 좋다고 만나고 있으니 제 눈에는 그저 한심하게 보일 수밖에요. 교수님께서도 저와 같은 생각이셨는지 남자친구가 따로 자리를 맡아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 여자친구를 앉혔으면 어땠을까하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제 생각에도 가장 괜찮은 방법인 것 같아요.

 

 

 연인들끼리 으레 하는 실수로 ‘사랑하니까 이 정도는 해주겠지?’라며 희생을 당연하게 기대하는 것이 있어요. 한 번은 친구와 친구여자친구, 그리고 저까지 셋이 함께 저녁을 먹은 적이 있어요. 친구의 여자친구가 다음날 친구와 제가 따로 약속이 있는 걸 알고는 친구에게 약속을 취소하고 자기와 함께 보내자고 하더군요. 이럴 수가……. 그 여자친구는 자신의 남자친구가 그렇게 약속을 취소함으로써 남자친구의 친구에게 어떠한 사람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던 걸까요? 결국 위대한 제 친구놈은 그렇게 여자친구님과 시간을 보내셨고 그 이후로 그 둘의 이야기는 더 이상 제 관심사가 아니게 되었어요.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균형이라고 생각해요. 균형 잡힌 관계에서는 그 무게를 각각 반반씩 나눠가지고서 상대에게 자신의 몫을 떠넘기지 않아요. 자기중심을 확고하게 잡아 상대에게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묻을 수 있고, 상대가 자신에게 어떠한 사람이길 바라는 마음보다 자신이 상대에게 어떠한 사람일지에 더욱 마음을 쓰기에 서로가 만나면서 즐거울 수 있어요. 반면에 균형의 추가 한쪽으로 넘어간다면 가벼운 쪽에서는 갈증을, 무거운 쪽에서는 피로를 느끼게 되겠지요. 저는 제 여자친구가 저를 왕자로 만들어주길 바라지 않아요. 그리고 그런 만큼 자신을 공주로 만들어주길 바라는 여자는 만나고 싶지가 않고요. 서로가 존중하고 배려하는 관계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늘 제 여성관을 이야기할 때마다 듣게 되는 “어디 그래서 여자들이 좋아하겠냐?”라는 걱정 어린 말씀들……. 뭐, 사실 걱정할 것도 아쉬워할 것도 없지요. 끼리끼리 짝 찾아 간다는 말, 저에겐 저만의 운명적인 짝이 있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김진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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