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진영입니다. 선거철만 되면 여지없이 제시되는 정치권의 미래사회에 대한 밝은 청사진, 나왔다하면 베스트셀러가 되어버리는 꿈과 희망의 자기개발서들, 누구나 열정만 가지고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넘쳐나는 멘토들……. 어디서 약을 팔아?!   - 너무 많아요. 이걸 언제 다 해……. - 세상에 빛이 너무 많아요. 빛이 너무 많으니 눈이 부셔 오히려 한치 앞도 제대로 분간할 수가 없어요. 삐딱선을 탄 채 가만히 한쪽 눈을 감고 (혹은 실눈을 뜨고) 이리저리 세상을 제단해보지만, 잘 안 보이는 건 이래저래 마찬가지네요. 우리는 한 사람의 실패예화를 듣고 쉽게 좌절하지 않아요. 그런데 왜 한 사람의 성공예화를 듣고는 쉽게 희망을 가지는 걸까요? 실패와 성공 중에 그 어떤 것이 더 보편적인 상황인지는 차치하더라도 단지 그것은 한 사람의 극단적인 예일 뿐이에요. 일부표본을 가지고 전체로 확대해석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되겠죠. 예, 우리는 희망과는 절대로 가까울 수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희망을 찬양하는 이유가 뭘까요? 그것이 판도라가 남긴 마지막 그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것마저 없으면 너무 비참하니까? 우리는 자기존재를 형성하는 힘을 외부에서 찾는 경향이 있어요. 우리네의 불확실한 삶 속에서 이 불확실함을 가려주는 희망이란 것에 기대고 싶은 절박한 마음이죠. 그런데 그렇게 해서 살림살이는 좀 나아지셨습니까? 아니요, 살림살이가 나아진 것은 오직 희망팔이를 하는 사람들뿐이죠. 우리는 스스로를 미래라는 희망에 마취시키면서 그것을 마치 현재의 즐거움인 냥 믿어버립니다. 만약 그들이 말하는 희망이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면 제 친구 엉구와 병우는 취업재수생이 아니라 이미 각각 잡스와 빌게이츠가 되었겠죠. 옆집에 잡스, 앞집에 빌게이츠, 뒷집에 워런버핏이 사는 우리사회라……. 어마어마하군요?  정말로 성장하기를 원하세요? 정말로 달라지기를 원하세요? 그렇다면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희망이 아니라 용기입니다. 희망은 위안을 주지만 그 자체가 우리를 성장으로 이끌지는 않습니다. 우리를 변화하게 만드는 것은 용기입니다. 칠흑의 밤을 이겨내는 사람만이 동트는 새벽을 맞이할 수 있는 것처럼, 불확실한 미래와 불안정한 현실을 감당하고 직면할 수 있는 용기만이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합니다. 희망과 달리 용기는 자기기만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으며, 희망 없이 용기만으로 힘을 낼 때 오히려 자신의 진가를 드러낼 수도 있습니다. 가을에 나무는 자신의 잎사귀를 모두 떨어뜨리고 겨울을 맞이합니다. 떨어진 잎사귀들이 봄을 맞이하는 거름이 되듯이 우리가 환상들을 현실과 바꿀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비로소 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김진영이었습니다. 
희망이 도망치더라도 용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 부데루붸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