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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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일엽폐목 [一葉蔽目] - 나뭇잎 하나로 눈을 가리다.2012-12-19 23:25
카테고리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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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통섭의 경지.JPG (15.9KB)

 안녕하세요, 김진영입니다.

 

 난세라도 도래한 것일까요. 이곳저곳에서 영웅들이 등장해서는 여지없이 훈수 질을 해대는데 도무지 피할 길이 없네요. 선거에 대해서는 누굴 뽑아야 하느니 마느니, 그렇지 않으면 세상이 망하느니 어쩐다느니. 제 취업문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면 되느니 마느니, 너에겐 이 길이 어울린다느니 어떻다느니. 또 사는 이야기에까지 자기가 해봐서 아는데 이렇게 하라는 둥 저렇게 하라는 둥……. 어휴, 늬들 앞가림이나 잘해. 어디서 계몽질이야?

 

 여러분께 이야기를 하나 소개할게요. 중국 고전 《笑林》이란 책에 나오는 일엽폐목(一葉蔽目)의 고사입니다.

 

 

 ◇ 일엽폐목 [一葉蔽目] - 나뭇잎 하나로 눈을 가리다.

 

 楚人貧居, 讀《淮南方》: “得螳螂伺蟬自障葉, 可以隱形。” 遂于樹下仰取葉。

 螳螂執葉伺蟬, 以摘之。 葉落樹下, 樹下先有落葉, 不能復分別, 掃取數斗歸。 ㄧㄧ以葉自障, 問其妻曰: “汝見我不?” 妻始時恒答言: “見。” 經日, 乃厭倦不堪, 紿云: “不見。” 嘿然大喜。

 䝴葉入市, 對面取人物, 吏遂縛詣縣。 縣官受辭, 自說本末, 官大笑, 放而不治。

 

 초나라의 어떤 사람이 가난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회남방》이란 책에서 ‘사마귀가 사냥할 때 스스로를 가리는 나뭇잎을 얻으면 그것으로 사람의 몸도 가릴 수 있다.’라는 구절을 읽고는 바로 나무 아래로 찾아가 그 나뭇잎을 구했습니다.

 때마침 사마귀가 나뭇잎을 잡아 쥐고 사냥을 하고 있었고, 그는 그 나뭇잎을 빼앗았습니다. 그러다 실수로 나뭇잎을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이미 바닥에는 떨어진 나뭇잎들이 가득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주변의 나뭇잎들을 모두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일일이 나뭇잎으로 자신을 가리며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여보, 제가 보여요? 안 보여요?” 아내는 처음에는 당연히 “보여요.”라고 사실대로 대답했지만, 하루가 지나도록 남편이 그치지 않고 물어보자 그냥 거짓말로 “안 보여요.”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크게 기뻐했습니다.

 다음날 그는 나뭇잎을 가지고 시장으로 가 사람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물건을 훔치기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옆에 관원이 있었고 그를 포박해서는 관아로 데려갔습니다. 그는 관아에서 일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는데 현관이 이를 듣고는 크게 웃으며 그냥 그를 풀어주었습니다.

 

  

통섭의 경지.JPG

 

 

 누군가 제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고, 제가 그 말에 힘입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일이에요. 그런데 그것도 누가 그 말을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바탕으로 그 말을 하는가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정도의 차이, 깊이의 차이, 수준의 차이 이런 것들의 문제인 것이죠. 교훈이라는 것이 단지 가르치고 배우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깨우침에 이르러야 하는 문제인데도 그런 것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아요. 또 세상살이라는 것이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에까지 하나라도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어 복잡 미묘한 것인데 어디서 달랑 책 한권 읽어갖고 와서는 세상의 이치를 논하기도 해요. 그러면서 자기 기준만이 최고의 답이고 나머지 것들은 다 아니라고 하지요.

 

 누구나 모두 자기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재단해요. 그리고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요. 이야기를 나눠보면 철학을 공부한 사람은 철학이야기로 세상을 풀고, 물리를 공부한 사람은 물리이야기로 세상을 풀고, 문학을 공부한 사람은 문학이야기로 세상을 풀어요. 이렇게 경험이나 학습을 통해 확립된 자기주관이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혹시나 이러한 것들이 우리가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는지 경계해보자는 뜻이지요. 일엽폐목의 이야기는 풍자를 통해 잘못된 학문의 방법을 비판하는 이야기에요. 학즉불고(學則不固)라는 말처럼 스스로의 좁은 생각에 갇히지 않도록 지식과 식견을 넓혀 올바르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유연한 사람이 되어야겠어요.

 

 물론 지금까지의 제 이야기도 그저 나뭇잎 하나에 그칠 수도 있겠지요!

 

 고맙습니다. 김진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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