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진영입니다.
버스를 탈 때는 앞문으로 타고 뒷문으로 내리는 것, 지하철을 탈 때는 내리는 사람이 다 내린 후에 타는 것,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내리는 사람이 다 내린 후에 타는 것, 여럿이 줄을 이어 문을 열고 들어갈 때는 문을 잠깐 잡아주는 것. 법규는 아니니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아닐지라도,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작은 시민의식이 아닐까 싶어요.
오랜 기간 자차, 택시로 출퇴근해서 이러한 시민의식을 의식할 일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근래에 일하는 지역을 옮기게 되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시민의식의 부재를 경험할 일이 생겼는데요. 최근에는 지하철에서 제 앞자리가 비어 앉으려다가 옆에 있는 사람이 가방을 던져 자리를 예약(?)하는 일이 있었어요. ‘이 자리가 내 자리인 게 대한민국 국룰 아니냐!’ 소리치고 싶었지만, 차마 말은 꺼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분개했어요. 아, 진짜 너무한 거 아닌가요?

사실 저는 대중교통 이용을 좋아하지 않아요. 까탈스러운 성격이라 사람 많은 곳에 가면 꼭 불쾌함을 느끼기도 하고, 지하철에서 공황을 경험한 이후로 아직도 약간의 두려움이 남아있기도 해서요. 어쩔 수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최근에 경험한 가장 불쾌한 일은 출퇴근 버스에서의 일이에요. 왜 사람들은 버스를 뒷문으로 타고 앞문으로 내릴까요? 왜인지 제가 타는 정류장에는 대체로 빈차로 버스가 오고, 만차가 되도록 많은 사람이 탑니다. 사람들은 줄을 선 순서대로 한명씩 앞문으로 타지 않고, 뒷문으로 빠르게 타서 버스 뒤쪽에 있는 자리에 앉습니다. 결국 앞문으로 버스에 탄 사람은 자리에 앉을 수가 없어요.
한 번은 이러한 상황에 너무 화가 나서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왜 다들 뒷문으로! 타냐...?”하고 소리를 친 적이 있어요. ‘뒷문으로’까지는 크게 외쳤지만, ‘타냐?’는 이성이 돌아와서 작은 소리였어요. 맞을까 봐 바로 고개를 푹 숙였어요. 어차피 말이 통할 사람이었으면 행동을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테고, 적극적으로 지적한들 안 좋은 꼴만 봤겠죠? 순간적으로 감정컨트롤을 하지 못한 저, 하지만 여전히 화나게 하는 사람들의 행동, 이 모든 걸 통틀어 공감과 위로를 받고 싶어 주변 사람에게 이 일화를 많이 이야기했어요. 재밌게도 저와 가까운 사람일수록 이 일화에 함께 분노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일수록 ‘그럴 수도 있지 않나?’하는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제가 왜 화가 나는지 깊이 생각해 봤어요. 제가 화나는 건 단순히 버스를 뒷문으로 타기 때문이 아니에요. 앞문으로 타기 어려운 상황이면 뒷문으로 탈 수도 있죠. 그리고 사람들이 제 기준에 옳지 않은 행동을 하기 때문도 아니에요. 세상 모든 일에 제가 분노할 수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어요. 제가 화나는 건 자리에 앉고 싶다는 그 이기적인 마음이 규칙을 지키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데, 제가 그 피해를 직접적으로 입었기 때문이에요. 횡단보도에서 담배를 피운다거나 운동은 하지 않으면서 기구에 앉아 쉬는 것처럼 엄연히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인데, 옆에서 직접 겪는다면 화가 날 수밖에요.
어떤 사람은 제게 저도 뒷문으로 타서 앉으라고 했어요. 그러면 앉고 싶은 제 마음이 충족될 테니까요. 한동안 ‘그런가?’ 생각했어요. 저는 버스에서 정말로 앉아 가고 싶으니까요. 세상과 어느 정도로 타협해야 하는 가를 그렇게 몇 달을 고민하던 중, 정신이 번쩍 들며 마음이 맑아지는 순간이 있었어요.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부피가 큰 사람이 많아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려 하는데, 뒤에 계신 분이 제게 “혹시 제가 타도 될까요?”하고 물으시더라고요. 굳이 묻지 않고 탔어도 아무 생각 없었을 텐데, 그 일상의 따뜻한 말이 제 생각을 환기하게 했어요. 역시 버스는 앞문으로 타야겠다고 그때 마음을 굳혔어요. 잘못이란 걸 알면서도 잘못하는 일을 하나 더 추가할 수는 없잖아요. 더욱이 제가 그렇게 싫다고 여겼던 행동이니까요. 아침마다 눈치를 보며 뻔뻔해지려는 제 모습을 상상하지 않아도 되어 마음이 편해졌어요.
저는 모든 면에 대단히 도덕적 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결벽이라 ‘니가 백로냐’, ‘*선비다’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방종해서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태도가 전부다. 습관이 삶이다.’는 말처럼 차가 없다고 무단횡단하지 않으며, 길에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삶의 태도를 견지하려고 해요. 최소한 스스로 부끄럽지는 않고 싶고, 나아가 제가 좋아하는 모습인 일상의 작은 상냥함, 배려, 따뜻함, 여유가 있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고 싶어요.
출근을 아예 일찍 해서 사람을 피해 보라는 조언은 아침잠이 많아 따르지 못하지만, 대안으로 요즘은 한 정거장 앞으로 걸어가서 버스를 타고 있어요. 앞 정거장이라고 해서 뒷문으로 타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앞문으로 타도 앉을 자리는 있더라고요.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결과를 얻어낸 것은 아니지만, 제 자신과의 싸움에서 제가 좋아하는 제가 이겼으니 일단은 결과에 만족합니다.
아침에 한 정거장을 앞으로 걸어가다 보면 가끔 눈앞에서 제가 타고자 한 버스가 지나가요. 그러면 잠깐 아쉬움에 탄성(+욕)이 나오지만, 괜찮아요. 제가 조금 더 기다리면 또 다른 버스가 올 거니까요.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