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유적
예술을 인간다움을 향한 순수하면서도 숭고한 결정체라 생각하기도 하고, 자기들만의 문화에서 더욱 공고해지는 어쭙잖은 허영이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여전히 잘 모르지만 경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예술은 실재하지 않더라도 황홀경은 실재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직관적인 구상 작품, 채도가 낮은 작품, 기술 완성도나 성의가 보이는 작품, 내면을 자극하여 생각하게 하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산다는 건 삶의 답을 찾는 일이라 생각하는데, 예술을 한다는 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질문에 의미를 부여하며 일상 속 문화공간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 장소 : 황궁우 - 위치 :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로 112 / 서울광장에서 도보 1분, 서울 지하철 시청역 또는 을지로입구역에서 도보 4분 거리 - 방문 일자 : 2025.06.12
안녕하세요, 김진영입니다.
잔뜩 기대하고 찾아간 곳에서는 기대만큼의 즐거움도 기대에 못 미치는 실망도 만날 수 있겠지만, 아무 생각 없이 발 가는 데로 가다 우연히 발견한 곳에서는 의외의 즐거움을 만날 수밖에 없어요. 자연스럽게 알게 된 좋은 인연이라든지, 여행지에서 아무 데나 들어갔는데 입맛에 제법 맞는 맛집을 발견한 것처럼요. 제게는 황궁우가 그랬어요. 황궁우, 들어본 적 있는 곳인가요? 그렇다면 역사에 관심 많은 분이거나 지리에 밝은 분일 것 같아요. 저는 둘 다 아니어서 작년에 처음 알았거든요.
종로에서 일하면서 좋은 점은 어딜 가도 볼 게 많고, 쉽게 의미 있는 곳과 조우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강서에서 일할 때는 조용하고 자차 출퇴근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는데, 강남에서 일하면 세련된 도시인의 느낌을 물씬 가질 수 있으려나요? 아무튼, 황궁우를 작년에 처음 만나게 된 계기는 종로에서 시청에 있는 한 칼국수 집에 가려고 이동하다가 길을 잃게 되면서예요. 저는 제 위치를 잘 가늠하지 못하는 편인데, 그래서 종종 길을 잃어요. 그날도 길을 잃고 헤매다가 묘한 계단과 함께 지도에 ‘황궁우’라는 곳이 있길래 호기심에 올라가 봤어요. 웬걸, 서울 시내 한복판에 갑자기 이렇게 있다고? 하면서 재밌고 신기했어요. 올해 다시 만난 황궁우도 그랬어요. 일정이 있어 종로에서 서울역을 향해 걸어가다가 서울광장 옆에서 ‘뭐야, 갑자기 뭐가 이렇게 있다고? 근데 작년 그 황궁우라고?’ 했어요. 작년에는 골목길에 있는 계단으로 황궁우에 왔었고, 올해는 원구단(환구단) 정문을 통해 황궁우에 왔어요. 네, 황궁우는 이렇게 가깝게 서울광장 옆 여러 호텔 사이에 자리 잡고 있어요.
용어가 익숙하지 않을 분을 위해 부연하자면, 원구단(환구단)은 유교식 예법에 따라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곳으로 현재의 원구단(환구단)은 대한제국 시기에 세워졌다고 해요. 한자 발음 때문에 원구단이라고 하고 환구단이라고도 하고요. 원래 원구단(환구단)에는 제례 공간인 본단, 위패를 모시는 황궁우, 그리고 여러 부속건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황궁우만 남아 있고요. 안내판에 있는 내용을 추가로 적어볼게요.
<원구단 정문> 서울특별시 문화유산자료
대한제국(1897~1910) 초기 원구단(환구단) 시설을 건설하면서 그 정문으로 지었다. 원구단은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시설로, 1987년에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당시 황궁인 경운궁(지금의 덕수궁) 맞은편 남별궁터에 세웠다. 원구단 시설은 제를 올리는 원구단과 천신의 위패를 모시는 황궁우로 이루어졌으며, 그 주변에는 어재실, 향대청, 석고각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황궁우와 석고각 안에 있던 돌북만 남아 있다. 정문은 원래 황궁우 남쪽, 지금의 조선호텔 출입구가 있는 소공로 변에 있었는데, 1960년대 말에 철거된 뒤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았다. 2007년에 강북구 우이동에 있는 그린파크호텔을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호텔 정문으로 사용하던 문이 원래 원구단에 있었던 것임이 밝혀져 정문의 이전 복원을 추진하게 되었다. 여러 후보지가운데 시민들이 원구단을 쉽게 알고 접근할 수 있도록 서울광장, 덕수궁과 마주보는 원구단 시민광장으로 자리를 정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세 개의 문이 나란히 있는 구조이며, 정면의 가운데 칸은 특별히 넓게 하고, 양쪽 칸은 좁게 조정했다. 기둥 위에는 장식이 돌출된 전통 방식의 지붕 받침대를 올리고,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오얏(자두)꽃 무늬와 봉황문 등을 장식으로 활용한 점이 특징이다.
국가유산청에서 한자 표기는 『고종실록』에 기록된 ‘圜丘壇’으로, 한글 표기는 고종이 제사를 지낸 1987년 10월 당시 『독립신문』의 기록에 따라 ‘환구단’이라고 정하였다. 이에 사적지명은 사적 환구단, 서울특별시 지정유산 명칭은 원구단 정문으로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환구단> 시대 : 1987년(광무 원년)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 87-1번지
환구단(圜丘壇)은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곳으로, 황단(皇壇) 또는 원구단(圜丘壇, 圓丘壇), 원단(圜壇, 圓壇)이라고도 한다. 이 자리에는 조선 후기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남별궁이 있었는데, 고종(高宗 : 1852~1919)이 1987년 황제에 즉위하면서 제국의 예법에 맞추어 환구단을 건설하였다. 1897년(광무 원년) 10월에 완공된 환구단은 당시 왕실 최고의 도편수였던 심의석(沈宜碩 : 1854~1924)이 설계를 하였다. 환구단은 제사를 지내는 3층의 원형 제단과 하늘신의 위패를 모시는 3층 팔각 건물 황궁우(皇穹) 돌로 만든 북[石鼓]과 문 등으로 되어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13년 조선총독부가 황궁우, 돌로 만든 북, 삼문, 협문 등을 제외한 환구단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조선경성철도호텔을 지었다. 환구단은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을 대내외에 널리 알리는 상징적 시설로서 당시 고종 황제가 머물던 황궁(현재의 덕수궁)과 마주보는 자리에 지어졌다.
원구단(환구단)이 본단과 황궁우가 같이 있을 때의 모습입니다. 왼편이 황궁우, 오른편이 본단입니다. 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 경성남별궁 사진엽서
계단을 올라와서 안을 둘러보면 여러 가지로 놀라게 돼요. 생각보다 작은 규모, 역사적 의미가 무색하게 호텔 뒤 정원처럼 보이는 존재감 때문에요. 같은 역할로 지어졌던 중국의 천단에서는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랐거든요. 원래 있던 건물이 그대로 있어도 물론 그 정도로 크지 않은 규모겠지만, 뭐든 온전히 유지될 수가 없었던 우리의 아픈 근현대사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져요.
그래도 의미를 찾아보자면 서울 시내 한복판에 이런 곳이 여전히 존재하고, 우리는 쉽게 이곳에 들러서 역사적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저는 잠시 각시탈이 되어 쇠퉁소로 다 작살내는 상상을 했는데, 일본 관광객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웃으면서 찍어드렸어요. 운영 시간도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로 넉넉하다고 하니, 근처에 약속이 있어 오시는 분이 있다면 약속 전에 잠시 들러보시면 어떨까요? 규모가 크지 않아 둘러보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도 않을 거예요.
저처럼 근현대사를 교과서 정도로만 알고 있는 분이라도, 황궁우를 통해 우리 역사 알기에 조금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엄청 기대하고 찾지는 마시고, 근처에 오시게 되면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 들러보시길 바라요! 고맙습니다.
▶ 함께 소개하는 것 1. 국립민속박물관 > 경성남별궁 사진엽서 - https://www.nfm.go.kr/user/extra/home/totalSearch/totalSearchCollectionView/jsp/Page.do?detailUrl=nfm_relic_kor&query=%ED%99%A9%EA%B6%81%EC%9A%B0&rescan=&qOld=%ED%99%A9%EA%B6%81%EC%9A%B0&qTarget=#; 2. 서울정보소통광장 > 이선미 님의 글 - https://opengov.seoul.go.kr/mediahub/30042828 3. 포레스트 님의 블로그 - https://blog.naver.com/heritage_study/222755569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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