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 있다. 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 김훈, <자전거여행> 中 -
개인적으로 김훈의 글을 좋아하지 않아요(혹 김훈을 좋아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이런 말이 실례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 '개인적으로' 라는 말을 덧붙여 보아요!). 간결한 문체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문장마다 수식이 너무 많아서 집중이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늘 '나랑은 안 맞아.'라고 생각을 해왔는데 웬걸요, 아침고요수목원에서 산수유를 보는 순간 그의 문장이 떠올라 버렸습니다. 조금 이른 방문에 꽃이 만개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가 묘사한 산수유의 모습을 보았어요. 아마 그의 글을 읽지 않았다면 그저 무심히 스쳐 지났을 테지요. 누군가의 말처럼 책은 정말이지 삶을 풍요로게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꽃도, 여행도, 그리고 좋은 만남도요.
지난 주말을 통해 제 삶이 한껏 풍요로워진 느낌입니다. 함께함이 즐거웠어요.
찾아보니 산수유의 꽃말이 지속(持續)과 불변(不變)이라고 하네요. 말하기는 쉽고 행하기는 어려운 두 단어인 것 같아요. 그 어려운 길을 계속해서 함께 걸어갈 수 있는 놀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일일수록 더욱 가치있는 일이니까요. 놀판의 좋은 만남이 변함없이 이어지기를요!
지난 이틀, 감사했어요. 오늘도 감사해요. 내일도 미리 감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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