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진영입니다. 놀판의 만남, 노현섭 선생님과 조현 선생님입니다. 
- ‘이해와 오해 그리고 화해’, 몽당수필 노현섭 선생님의 블로그 입니다. - http://blog.naver.com/707shine ● 김진영 깊은 인생을 탐하며 예쁜 글을 좇는 어느 밤이었다.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어느 블로그까지 흘러갔다. 이 블로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대뜸 흘러나오는 가야금 연주음이 나의 귀를 압박하고, 심해탐사 다큐에서나 볼법한 진한 바닷물 색 블로그 배경이 나의 눈을 압박한다. 게다가 그 위에 쓰인 하얀 글씨라니! (……) 이 블로거, 글을 읽으라고 써놓은 것일까? 젠장, 안구건조증 도지겠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손이 오른쪽 상단으로 향하는데 고갯짓을 따라 눈이 왼쪽 상단을 바라본다. ‘반추, 반추하여 쓰되 머뭇대지 않길...’ 손이 멈칫한다.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눈을 끔뻑거리며 블로그를 둘러본다. 글들이 하나같이 만만치 않다. 빠져든다. 읽다보니 끝을 모르겠는걸! 멋대로 판단했던 블로거의 소통에 대한 의지, 이건 오만함이 아닌 자신감이라는 확신이 든다. ‘읽을 테면 읽어라. 그리하면 너에게 좋을 것이다.’ ● 노현섭 선생님 여느 날과 다르다. 시간이 빠르게 간다. 발걸음도 경쾌하다. 고작 e-ㅡmail 몇 통에 이런 흥분을 경험할 줄이야. 얼마 전 놀판의 주인장에게 편지를 받았다. 편지 내내 그는 고어체 비슷한 모양새를 유지했으며 지독한 겸손을 보이며 나를 선생이라 불렀다. 글로 할 수 있는 모든 배려를 한 셈이다. 마치 VIP를 모시듯?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기분이었다. 블로그를 살피던 그가 나를 찾아오겠단다. 오해라 여겼다. 그를 통해 자극받고 싶지 않았다. 이른 나이에 ‘행복’을 논하겠다는 그들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돌려보내고 싶었다. 게다가 별 것 아닌 날 찾아와 도대체 무얼 얻겠다는 것인가. 짐작하기론 수도경기 지역일 텐데 이 먼 광주까지 와서? 먼 길을 나서야 할 테니 동행할 이들과 다시 상의하고 한 번 더 생각하길 당부했다. 나야 타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줄이고 그저 좋아하는 것들이나 탐닉하며 시간을 보내는 한량인데. 영향을 줄이겠다고? 불가능을 꿈꾸는 바보인 셈이다. 혹은 타인의 삶을 보고 싶지 않다는 개떡 같은 인간이지. 세계시민과 사회적 책임, 역사 속 선대가 내게 선물한 것에 대한 부채의식 등은 머리통 저 구석에서 잠자고 있는 요즘이니. ● 김진영 블로거에게 만나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다. 솔직히 반신반의한 마음이었다. 내 기준에서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둘 중에 하나다. 정말로 깊은 인생을 사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정말로 완벽한 사기꾼이거나. 어중간할 수는 없다. 그의 깊은 인생이 정말로 글에 우러나온 것일까? 아니면 여느 글쟁이처럼 그저 숙련된 기술자인 것일까?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일까? 내가 그를 만난다고 해서 그를 꿰뚫어볼 수 있을까? 만남이 정말 의미가 있을까? 나는 무엇 때문에 그를 만나고 싶어 하는가? 답장이 왔다. 스스로를 선생이 아닌 건강한 놀음을 탐내는 선배라고 칭하는 이 블로거. 답장속의 글이 청아하다고나 할까? 글이 마음을 울린다. 글로써 인생이 보인다면 꼭 이와 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처음 편지를 보낼 때의 당돌한 마음은 어느덧 사라지고 부끄러운 마음만이 남는다. 나의 당돌함이 혹여 무례함으로 비춰지지는 않았을까. 몇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나는 글로써 벌써 그를 좋아하게 됐다. 물론 훌륭한 글 솜씨에 약간의 질투도 더해서. 그래 이제부턴 정말 선생님이다. 만나고 싶다. 배우고 싶고, 즐기고 싶고, 취하고 싶다. ● 노현섭 선생님 약속한 날. 수업을 최대한 일찍 마치고 도착한 약속장소. 평소의 나라면 머쓱해하는 침묵, 사람대하길 어려워하는 낯가림 2단 콤보를 날리며 마주한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보통이다. 허나 그들이 나를 조금은 바꿔 놓은 모양이다. 일주일 여간 메일을 주고받으며 나를 들뜨게 해준 그들. 나에게 무언가를 배우겠다는 그들의 겸손이 내 허영을 자극한 모양이다. 정말로 내가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란 착각의 늪에 빠진 모양이다. 그것도 빠져 나올 수 없을 만큼 깊이. “안녕하세요. 노OO입니다.”
자신 있는 어조와 목소리로 손을 내밀었다. 즉흥적이었지만 허영과 착각의 깊이가 자신감에 가득한 목소리와 또렷한 발음, 눈빛을 내게 선물했다. 그들은 17년 전 홀로 히치하이킹을 하며 전국을 돌던 지난 내 모습과는 달랐다. 여행객이라기엔 너무도 깔끔했으며 윗지방의 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을 만큼 중무장을 하고 광주를 찾았다. 앳된 얼굴에서 88만원 세대의 불안과 청춘의 도전의식 정도를 찾아보고 싶었다. 평소 대화의 목적을 공감과 이해로 두는 나로선 어렵지 않은 선택이다. 내 머리 속이 바삐 돌아가는 것과 달리 그들의 눈빛은 머릿속이 하얘졌다는 듯한 표정들이다. 그들은 나를 어떻게 상상했을까? 식사를 하러 간 자리에서 오래지 않아 건네받은 얘기. “상상했던 것과 다른 모습이세요.”
내 용모나 첫인사가 블로그에 썼던 글과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하긴 블로그에 자신감과 강단 있는 태도를 보인 기억이 내게도 없으니 말이다. 첫인사에서 느꼈을 그들의 괴리감을 이해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블로그에선 고작 ‘읽는 이들과 소모적인 논쟁은 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 정도나 담았다고 할까. 무척이나 사려 깊고, 차분한 이로 읽혔던 걸까. 그들 역시 어색함을 감추며 겸손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다. ‘이거 잘못 온 거 아냐?’하고 생각했을는지도. 오해를 살만하다. 쩝. 그들에게 배움을 전할 만한 나는 아니었던 거다. 그런 부족 감추려 가까운 지인과 동석하겠다고 했다. 주문한 식사가 나올 무렵 내 호사스러운 입놀림을 막아줄 그가 왔다. 내게 불같은 도전 의지를 삶으로 가르치며 박지성의 심장을 단 것처럼 마흔을 시작하는 음악선생. 내게 없는 무언가를 음악선생이 대신 보여주길 바랐다. 재주는 음악선생이 구르고 감탄사는 내게 돌아오길 바랐을까. ㅋ 누구나처럼 우리도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멀리 왔으니 지역색 드러낼 만한 음식도 권하고 싶었다. 화두를 정해 오겠다는 그들에게 저녁 시간이 넉넉할 테니 괜한 고민은 줄이고 시간이 우리에게 주는 것에 순응하며 어색함도 즐겨보자 했던 나. 나이 어린 그들이 내 앞에서 어려워 할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은 게지. 사실, 나이보다는 생각의 크기를 더욱 존중하는 나로선 하기 어려운 배려였다. 한편 한국 사회의 수직성에 아직은 물들지 않길 기대했던 걸까. 전라도 특색 일미하면 홍어겠으나 아직 그것 즐길 나이들은 아닌 것 같아 보성에서 키워 내놓은 돼지고기로 조리한 음식을 권했다. 석쇠에 양념한 고기를 올려 연탄불에 구워 나온 식사메뉴는 다양한 야채와 전라도의 찬거리를 곁들였으니 그만하면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어른 같지 않은 어른을 마주했다는 사실을 빼면 말이다.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다들 아는 것일까. 이후 술자리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될 이야기들에 앞서 간단한 질문들로 식사자릴 유지하던 서로들. 답변이 길어져야 하는 화두를 꺼내 놓는 음악선생에게 그 좋은 이야기는 술자리로 옮긴 후 잇자고 부탁했다. ● 김진영 사실 놀판여행은 핑계에 불과했다. 노 선생님을 만나러 가고 싶었지만 혼자서는 감히 엄두를 낼 수 없었고, 얼마 전부터 여행을 가자고 조르고 있던 승렬이를 꼬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돌직구를 던졌다. 광주에 가고 싶은 내 마음을 말하고 나를 위해 한번 시간을 내어 달라고 부탁했다. 실패했다. 이 인정머리 없는 녀석은 나의 즐거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뭐, 그래. 그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퉁치기로 하자. 다음으로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설득을 시도했다. 종교인인 그에게 성경구절을 빌려 “너를 사람을 낚는 놀판인이 되게 하리라.”라고 했지만 젠장! 이것도 실패했다. 간신으로서 온갖 모략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온 그에게 나의 얕은 술수는 통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완고하게 부산여행을 고집했고, 중간에 청주에 들르는 것을 용인할지언정 광주는 용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거의 포기한 상태에서 선생님과 주고받은 메일을 그에게 보내며 알아서 결정하라고 하였다. 곧 답장이 왔다. “가자, 광주.” 그렇게 광주로 출발.
인생 도처에 널린 고수들의 이야기를 담아오거든 같이 탄복하며 웃음 짓길 바란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나 발걸음을 재촉했다. 우리는 선생님을 빨리 만나고픈 기대감에 약속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약속장소에 도착했고, 선생님도 우리와의 만남을 기대하셨던 걸까 약속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우리를 맞으러 오셨다. 그렇게 선생님을 만난 광주의 어느 골목길. “안녕하세요. 김OO입니다.”
선생님을 따라 자리한 식당에서 나는 선생님께 상상했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럼 나는 어떤 모습을 상상했던 것일까. 글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딱히 어떤 모습을 상상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럴 수 있을 정도로 내가 섬세한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그저 선생님의 어색함도 즐겨보자는 말씀을 지키지 못한 나의 입방정이었던 게지. 생각해보면 선생님을 향한 나의 어색함과 나를 향한 선생님의 어색함이 어찌 같을까. 나의 어색함은 단순하게 존재하지만, 선생님의 어색함은 나의 어색함으로 인해 존재한다. 고로 내가 어색해하는 것에 비례해서 어색하셨을 게다. 곧이어 조현 선생님도 합류하셨고 선생님들의 표현을 빌려 ‘호들갑’으로 우리의 어색함을 배려해주셨다. 선생님들의 ‘호들갑’에 어찌나 웃었던지. 그런 선생님의 ‘호들갑’이 어색함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배려였다는 사실을 왜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을까? 왜 상상했던 모습과 다르다는 뻘소리를 했을까? 뭐, 어쨌든 어색함에서 오는 이질감이 친밀감으로 바뀌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유인즉슨 술! 첫 편지에 선생님은 먼 길 찾아오면 소주한 잔 대접하겠노라고 하셨다. 와우! 굳! 굿! 궅! 궃! ‘술을 먹으면서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 신선놀음을 하는 기분일까?’, ‘꿈꾸던 이백처럼 놀게 되는 것인가!’ 라는 둥의 기대를 나는 나름 품고 있었다. 만남의 첫자리에서부터 술이 돌기 시작했고 자리를 옮기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술이 돌기, 아니 술이 부어지기 시작했다. 이날 술자리의 규칙은 술은 셀프로, 알아서 마시기. 음, 그런데 술이 달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 잔을 채우고 비우기를 반복했다. 후기는 어떻게 작성해야할지, 나중에 이날의 기억을 어떻게 되살릴지는 고민하지 않았다. 안온사람? 에~ 뭐 자기 손해지. 흥. 그 순간의 행복을 오로지 내 것으로만 하고 싶었다. ● 노현섭 선생님 술자리, 궁금해 온 것은 그들인데 하고 싶은 질문은 내가 더 많았다. 참지 못하고 던진 첫 질문은 학자금 대출을 받은 사람? 세 친구 중 한 사람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큰 금액은 아니었다. 그래도 ‘채무’라는 낱말의 무게를 작게나마 경험한 나로선 작게나마 세상에 대한 분노와 그 친구가 겪고 있을 심정적 어려움에 안타까움을 느껴야 했다. 마음 같아선 ‘대신 치러주마’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어 올랐으나 미안하지만 참은 게 다행스럽고 미안하다. 난 그렇게 짜잔하니 살아간다. 대화를 잇던 중 음악선생이 시집을 꺼내들었다. 다름 아니라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다루는 자신들의 악기에 대해 쓴 시를 모은 종이 뭉치를 술자리에서 편 것이다. 30여 편의 시는 모두 자신의 감정들을 투박하지만 솔직하게 뭉뚱그려 놓았다. 아이들의 손이 옆으로 또는 위아래로 차분히 옮겨가며 낱말들을 줄 세우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진다. 아이들의 시는 술자리의 다섯 명의 마음을 흩트려 놓기에 충분했다. 행복에 마치 규칙이라도 있다는 듯 돌아가는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인생의 선배들을 찾아다닌다는 놀판. 그래서 광주까지 왔다는 세 사람. 사실 그렇다. 언제나 우리는 마음에 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큰 명분을 찾으려 하고, 더 큰 동의를 구하려 애쓴다. 선험적 인식이 불가능한 인간의 당연한 불안일 것이다. 그렇다고 미래를 안다면 무슨 맛이 있겠는가. 삶에 어찌 감동이 있겠는가. 어쩌면 그들 역시 동의표를 구하는 여행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놀판을 만나는 것을 그저 좋은 술친구와 저녁을 함께 하는 것이라 의미를 축소했던 나. 허나 열린 마음을 준비하고 서로에게 공감하고, 시대를 함께 이해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동석한 우리. 나로선 놀판을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다른 모양의 행복에 동의를 한 셈인데. 그들은 내 마음을 전해 받았을까. 놀판의 가슴에 아이들의 시는 어떤 의미가 되었을까. 선생님의 권유로 악기를 바꿨지만 지난 악기에 대한 그리움을 종이에 가득 채운 귀염둥이. 그리움이 적힌 종이의 네 구석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혹시라도 글을 마치고도 다스려지지 않는 자신의 그리움을 종이를 꼬불쳐 접거나 낙서로 대신했을까 궁금했다. 음악의 3요소를 쓰고, 그 보다는 사랑과 자신의 감정이 더욱 중요한 요소라고 써 놓은 시. 이성이 정한 원칙보다는 자신의 감정, 그 중 사랑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아이의 가르침이 적잖이 내 가슴을 두드렸는데 놀판의 가슴에도 울림이 있었을까. ● 김진영 조현 선생님이 갑자기 종이 뭉텅이를 꺼내셨다. 무언고하니 학교에서 조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음악에 관해 시를 써오라고 숙제를 내셨고, 그래서 아이들이 제출한 숙제를 모아놓은 뭉텅이였다. 선생님들도 승렬이도 현민이도 아이들의 시를 보면서 ‘으아~’, ‘좋다~’등의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러나 나는 홀로 공감하지 못했다. 도무지 공감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공감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모두가 공감하지 못했다. 아니, 용납하지 못했다. 모두들 내게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 글을 읽는 이들도 모두 그리 생각하겠지.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일까? 시는 아름다운가? 문학은 아름다운가? 아름다움은 아름다운가? 세상에 본디부터 아름다운 것은 없다. 사람들은 끔찍한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방편으로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그러고는 그 거짓말로 스스로를 속인다. 나는 그 거짓말로 스스로를 속일 수 없을 뿐이다. 사람들의 생각처럼 그렇다고 내 삶이 불행한 것은 아니다. 직면하는 자는 결코 불행한 자가 아니다. 나에겐 그 거짓말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거짓말로 스스로를 속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단지 이렇게 감정의 발생 기제가 조금 다른 것일 뿐인데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조금은 이방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마음이 복잡해졌다. ● 노현섭 선생님 나도 행복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다만 고민이 생길 때면 꼬박 세 가지를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그것은 옳은가, 필요한가, 좋은가. 이 중 무엇을 우선시 하느냐에 따라 우린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역사를 깊게 이해하진 못하지만 필요에 의해 굽이쳐 온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필요’는 선택을 위한 물음에서 제해도 될 것이다. 혹, 정말 필요한가라는 물음으로 바뀐다면 모를까. 그렇다면 남는 것은 좋은가와 옳은가. 철학자 탁석산 선생의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였던가? 기억이 불분명하다. 알기로 그 분은 한국인의 정체성에 관해 무척이나 긴 시간 연구해온 분이다. 진중권씨는 그 분의 연구결과에 비판적인 얘길 늘어놓았던 것 같더라만. 적어도 탁석산 선생의 최근 저서에서 난 그가 점쟁이 같았다. 그는 나를 한 번도 만나지 않았음에도 내가 어떤 생각으로 사는지를 다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사람 사는 일이 모두 그러할 것 같기도 하다.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서도 인간의 사회화 과정은 대부분 비슷할 테니 말이다. 헤어지기 전 세 명의 술친구들에게 모래? 밀알을 당부했다. 내가 마주한 세 명의 놀판. 이제 30명이 넘어선다는 놀판의 회원수. 허나 삼천만이, 대한민국이 ‘놀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나 2012년의 놀판 구성원들이 살아 있는 중에는 어려울 것이다. 2012년의 놀판 회원들이 개인의 습관과 집단의 관습을 넘어서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판의 취지나 존재 이유가 시대정신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맥을 잇는다면 대한민국이 놀판이 되는 날이 분명 올 거라고. 그 믿음이 고목이 되고 쓰러지지만 않는다면 대한민국이 놀판이 될 거라고. 그것이 옳은 일이며 필요하고 좋은 일이라면 무얼 망설여야 하는가. 누구도 그대에게 상처주지 않았다. 구속하는 것도, 자유롭게 하는 것도 너다. 파랑새를 찾아 청주에 들러 광주를 들렀던가. 그대들의 가슴에서 날개 짓하는 파랑새를 보라. 애들이나 읽는 파랑새 이야기라고? 헌데 왜 그 이야기가 명작이 되고, 나 역시 그대들의 가슴 속의 갇힌 파랑새를 풀어주라 말하겠는가. 기억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조금이나마 극복할 수 있었다면 우린 더 행복해 졌을까, 불행해졌을까. 그 역시 그대가 결정할 수 있다. 모두 그대의 가슴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끝으로 세 사람에게 거짓말 한 거 사과할게. 옳은 것, 좋은 것, 필요한 것들을 앞에 두고 흔들린다는 현민이. 두렵다는 너. 나 역시 옳음이 무엇인지 모르겠어. 하지만 너희들이라면 나처럼 모호하고 우유부단하기보다는 실패에서 배움을 구하고, 시간이 걸리는 과정을 의미 있게 생각해주길 바랐나봐. 사실 도덕적 삶이 풍기는 향기는 존경을 불러 일으키잖아. 더욱 커진 너희들의 모습을 기대하며 거짓말을 했어. 난 옳은 것을 택하려 노력한다고 했지만 사실 뜨거운 것은 아닌 것 같아. 하지만 너희들의 나이는 그런 멋스러움을 가져야 한다는 편견이 있었나봐. 그저 선배가 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늦게나마 다시 거짓에 대한 고해를 하는 까닭을 한 번쯤 고민해주면 좋겠다. 수고~ ㅎ ● 최현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전라도 광주(光州)는 이번 만남을 통해 그 이름처럼, 빛과 같은 도시로 내게 자리 잡았다. 왜 가끔 무가지의 심심풀이 사주를 보면 훌륭한 귀인을 만나게 된다는 말이 있지 않나. 내게 그 좋은 운이 든 날이 바로 이 분들과의 만남이 아닐까 생각했다. 추구하는 진정한 소통과 만남. 늘 꿈꾸던 그런 만남의 자리였다. 진짜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껍데기가 아닌 진짜 꽉 찬, 단단한 알맹이의 사람들과의 1초, 1분. 한 단위 한 단위를 아낌없이 즐기며 현재를 함께 하고 있다는 기분에 행복감이 떠나질 않았다. 화장실에 가는 그 짧은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할 정도였는데, 선생님들의 귀한 한 마디, 좋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는 소중한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주책없지만 만남 도중에는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여러 감정과 생각들이 녹아있는 눈물이었던 것 같다. 음.. 내 부족한 언어 표현으로 그 시간의 순도 100프로 눈물을 한정해버리고 싶진 않다. 다 이해해줄 수 있다는 듯 지그시 바라봐주시는 눈빛, 사람 참 좋아 보이는 씨익~ 웃음 그리고 그 여유. 선생님들의 말 한마디에선 직접 산 경험으로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온,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것 같은 묵직함이 느껴졌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한 CF 노랫말이 딱이다. 처음 뵌 분들이지만 어떤 따뜻한 인상을 받았기에 나는 정말 솔직한 알맹이가 되었다. 늦은 시간까지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몇 번이고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이 행복한 만남의 순간이 마음속의 한 기준이 되어서 앞으로 다가올 만남들의 분위기를 비교, 측정할 텐데, 정말 한동안 경신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른들이 왜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을 만나보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해준 만남이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조금이라도 성장했을 것이고 이전과 다르리라 믿는다. 이 소감을 작성하면서 갖는, 작은 바람은 다시 선생님들을 만나 뵙고 싶다는 것. 한 번의 짧은 만남은 아쉬움이 너무 크다. 
- 어렵게 인터넷에서 찾은 조현 선생님의 사진입니다. - 선생님께서 저희와의 만남 후기 글을 보내주셔서 거기에 저희의 이야기를 조금 붙여봤어요.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야 선생님의 글하고 어울릴지 몰라서 몇 날 며칠을 고민했는데 도저히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가 않네요. 지금도 답답한 마음뿐이지만 후기를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을 것 같아 부족한 상태나마 올려봅니다. 사실 그날 술에 너무 취해버렸기 때문에 그날의 대화를 지금 유기적으로 기억해낼 수가 없어요. 그래도 콩나물시루에 물을 부으면 물은 다 빠져나가버리지만 콩나물은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처럼, 이날의 대화는 다 흘러가버렸지만 제 마음속에는 많은 영향이 남았네요. 우선 책임감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사실 저는 놀판을 하는 것이 많이 두렵습니다. 회원 분들께 놀판을 통해 어떤 좋은 것을 드릴 수 있을지, 그리고 그 기대하시는 바를 충족시켜드릴 수 있을지, 또 스스로도 그 책임과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지 정말 두렵습니다. 제가 좋을 줄 알고 놀판을 만들었더니 웬걸 책임감도 부담감도 엄청나더군요. 놀판에서 어떤 콘텐츠를 양산해내야 할지, 놀판을 향한 사람들의 기대를 제가 충족시켜줄 수 있을지, 사람들이 제게 자신의 책임까지 떠넘기는 건 아닌지, 지금도 고민이 너무 돼서 기쁘고 재밌는 순간보다 고통스럽고 힘든 순간이 많아요. 하루에도 수십 번 지금이라도 때려치우자고 생각하지만 지금까지 만나주신 분들과 앞으로 만날 분들의 순수한 마음을 생각하게 되면 어쩔 도리가 없게 됩니다. 네, 저는 이제 막 ‘책임’이라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배워가야지요. 다음으로 제 철학에 대해서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어요. 위에 제가 쓴 글을 보면 아시겠지만 제가 선생님의 말씀에 온전히 공감을 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로 소화해내어 받아들이는 것이 놀판의 만남에서 추구하는 방향이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번 만남이 참 좋았다는 생각을 해요. 선생님의 답은 제게 질문이 되어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겨주었고,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지금 결실을 이뤄가고 있는 중이거든요. 마지막으로 희망을 가지게 되었어요. 노 선생님, 조 선생님이란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된 건 정말로 행운이었어요. 막막하기만 한 이 세상에서 사람 내음 물씬 풍기는 사람을 만나게 된 건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에요. 선생님들의 삶은 제 미래의 삶이기도 하니 제 마음에 희망이 가득해질 수밖에요. 좋은 사람을 만나다. 이렇게 늘 지금처럼 좋은 사람들과의 교류를 놓고 싶지가 않네요. 좋은 시간을 허락해주신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진영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