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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0121114 김봉연 선생님.2012-11-20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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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김진영입니다.

 

 

 이번에 놀판의 만남에서 찾아뵌 분은 김봉연 선생님입니다. 김봉연 선생님은 숭실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계신데 중국현대문학을 전공하셨다고 합니다. 김봉연 선생님의 ‘중국현대문학개론’ 이란 수업을 수강한 오승렬님이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따로 우리사회와 관련해서 하시는 말씀들이 참 인상적이었다며 놀판의 만남을 통해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저 또한 선생님의 수업을 한 번 들은 적이 있지만 그때는 문학수업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선생님의 말씀을 많이 듣지 못했고, 그러한 이유로 선생님의 이야기에 더욱 호기심을 가진 채로 만남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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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어색해하시는 선생님과 승렬님  -

 

 

 

- 선생님에 대한 기억.

 

 

 만남에 앞서 선생님과의 지난 수업시간을 떠올려 봤어요. 생각해보니 제게는 가장 의외였던 선생님이셨어요. 하루는 선생님께서 중국의 ‘민공(民工)’과 관련해서 동영상을 하나 보여주시고는 느낀 점에 대해 리포트를 제출하라고 하셨어요. ‘민공’에 대해 제가 잘 몰라서 정확한 설명을 드리지는 못하지만, ‘민공’은 중국의 경제가 급성장함과 동시에 농촌으로부터 도시로 유입된 노동자들을 지칭하는 말이에요. 중국은 이 ‘민공’과 관련해서 여러 사회문제를 겪고 있는 중인데요. 동영상은 ‘중국음식에는 계급이 있다’라는 타이틀로 졸부가 된 몇몇 중국인들과 이 ‘민공’들의 식사를 비교하며 중국의 현실 문제를 고발하고 있는 내용이었어요. 당시 학생들은 동영상 속 비루한 모습의 ‘민공’들을 보며 “역시 중국”이라며 내내 비웃음을 멈추지 않았고, 저는 이러한 학생들의 태도에서 환멸과 경멸의 감정을 동시에 느꼈던 것으로 기억해요. 아마도 선생님께서는 리포트 과제를 주시며 학생들이 중국의 현실문제에 대해 정확한 인식과 그에 따르는 현실비판을 하기를 원하셨겠지만 저는 ‘민공’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선에서 보이는 ‘의식부재’에 대해 글을 썼어요. “우리는 중국의 ‘민공’문제를 보고 중국이 경제성장에만 집중하느라 사회격차가 벌어지는 것에 대처하지 못한다고 비웃지만, 우리 또한 중국의 어두운 면만 바라볼 뿐 이미 G2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세계시장의 패자가 된 중국의 모습은 바라보지 못한다.”, “‘민공’들은 그저 하루를 걱정하며 소시민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스스로의 한계를 결정지어버리고 정체된 삶을 살고 있다. 우리 또한 중국에 대한 인식이 고착된 채 중국의 잠재적 위협에 대해 대비하지 못한다면 의식이 정체된 것은 우리와 ‘민공’이 다를 바가 하나 없다.”라며 우리는 감히 ‘민공’을 평가할 자격이 없다고 썼어요. 선생님께서 비록 자유롭게 글을 써보라고 하셨지만 글이 자유롭다고 해도 너무 본래의 맥락과 달라져 버리기도 했고, 또 어찌 보면 선생님의 문제제기 자체에 딴죽을 건 내용이기도 해서 리포트 점수는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웬걸, 친구들 중에서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아 놀랐어요. 게다가 선생님이 코멘트를 달아 리포트를 돌려주신 것에 또 한 번 놀랐고, 코멘트 내용에도 결정적으로 크게 놀랐어요. 당시 선생님의 코멘트는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모습이 좋네요. 앞으로도 계속 지금과 같은 모습을 지켜나가길 바라요. 그런데 마지막 한 줄은 없는 편이 좋을 것 같군요.” 여기서 마지막 한 줄이라는 것은……. 분량을 A4한 장으로 딱 맞게 채우는 것도 능력이라며 딱 맞춰오라던 선생님. 저는 한 장에서 딱 한 줄이 모자라게 글을 썼고, 그 모자란 부분을 승렬님이 대신 써줬는데 그 한 줄의 이질감을 어떻게 포착하셨던 걸까요? 선생님의 지적에 놀랄 일이지만, 가장 놀라고 의외라고 느꼈던 것은 제 글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었어요. 겉으로는 자신의 생각을 적어내라 말하지만 정작 교수의 생각을 그대로 적어내지 못한다면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 대학교의 허울 좋은 평가시스템에서 제 글이 좋은 점수를 받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아이고, 또 서론만 길어졌네요. (죄송죄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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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공(民工) -

 

 

 

-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

 

 

 이메일을 통해 약속을 정하고 조용한 장소를 찾아 선생님을 뵈었어요. 허걱, 밥값이 무려 평소에 먹던 가격의 두 배가 넘는 곳이었어요. 아뿔싸 싶어 당황하고 있는데 선생님께서는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밥과 커피는 당연히 무제한으로 제공되어야 한다며 마음껏 고르라고 하셨고, 심지어 저희에게 책까지 선물로 주셨어요. (저희는 빈손으로 찾아갔다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 첫 만남의 데면데면함을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 선생님께서는 젊은 학생들과 만나게 되어 정말 즐겁다며 호탕하게 웃어주셨고, 자연스레 놀판의 취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요즘 청춘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거리로 이야기가 이어졌어요. 시중에 넘쳐나는 힐링책들, 그렇게 청춘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어른들……. 선생님께서는 어른들에게는 청춘들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고 하셨어요. 청춘들에게 지금의 세상을 물려준 기성세대로서 그저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요. 실제적인 도움인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신다고요. 뻔한 이야기 같다며 걱정하셨지만 책과 세상을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다보면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격려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선생님은 선생님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일에 자책하셨지만, 청춘에게 왜 이렇게 나약하냐며 싫은 소리를 내뱉는 어른들이나 애들 상대로 약팔이나 하는 어른들에 비하면 훨씬 청춘에게 힘이 되는 분이셨습니다. 예, 힘든 것도 우리 몫이지만 극복해야 하는 것도 우리 몫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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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께서 선물해주신 책 

 

 

- 문학과 삶, 그리고 정치.

 

 

 승렬님과 저의 경우에는 중어중문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중국어나 중국문학에 특별히 더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아요. 단순히 학문자체보다는 그것을 나 자신이나 우리 사회에 연결 지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에 더욱 관심을 갖고 있지요. 승렬님을 통해 선생님의 수업시간에는 단순히 학문자체를 공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학문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봤다고 들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과 만나면 단순히 문학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바랐어요. 이메일을 통해 선생님께 우리나라 정치전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혹시 부담스러워하시거나 무례하게 받아들이실까봐 걱정을 많이 했어요. 다행히 걱정했던 것과 달리 선생님께서는 흔쾌히 받아들여주셨고, 만나서도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오랜 시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중국현대문학이라는 성격자체가 정치와 대단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특수한 상황아래 있기 때문에 수업시간을 통해 문·사·철이 종합적으로 얽혀있는 관계를 공부한 것이라고 하셨고,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중국은 정부에서 관리하는 ‘작가협회’라는 단체가 있어 작가들이 그곳에 속하여 작품 활동을 합니다. 이번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모옌’의 경우에도 중국작가협회의 부주석이기도 합니다. 따로 더 말씀드리지 않아도 이런 관계에서 오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짐작하시리라고 봅니다.) 아울러 그 당시의 문학과 사회상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반추해 보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모색하는 것이 문학의 현실적 임무라고 여기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때문에 문학을 공부하는 우리 대학생들 또한 자신의 포지션 속에서 자신이 속한 현실과 사회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하겠다고 제언하기도 하셨지요. 자세한 대화내용은 오해의 소지 없이 전달할 자신이 없어 생략하겠지만 이어서 대선후보들의 공약도 비교해보고, 올바른 정치인의 덕목도 토의해보고, 앞으로 우리사회가 나아가야할 길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제가 미처 몰랐던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고 새로운 생각도 해보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다가올 대선에서 누구에게 투표하든 우리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주체적으로 공부하여 파악하고, 반드시 투표하는 것으로써 자신의 권리이자 의무를 행사해야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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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망함과 웃음 사이?  -

  

 

 

- 웃음으로 마무리하며.

 

 

 정치이야기라는 다소 민감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서도 시종일관 웃으면서 대화를 이어갔어요. 육아문제, 교육문제, 작가이야기, 영화이야기, 학과 돌아가는 이야기, 밑도 끝도 없는 자기비하, 맞춤법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 배가 빠지도록 웃다가 나중에 오늘대화를 도대체 어떻게 정리할 것이냐며 정리는 할 수 있겠느냐며 걱정하시던 선생님……. (앞뒤 내용 다 날려버리고 이렇게 제 맘대로 정리합니다  ) 아쉬웠던 것이 승렬님과 제가 워낙 중국문학, 아니 문학 자체에 무지했던 까닭으로 선생님의 전공분야인 중국현대문학에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못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문학을 통해 다양한 감정의 간접경험을 얻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한편 아름다움에 가려진 추악함과 그늘 또한 서늘하게 받아들인다 하셨습니다. 또한 기회가 되면 저희도 그러한 즐거움을 알게 되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승렬님에게는《7년의 밤》(정유정 저)을 저에게는《소수의견》(손아람 저)이라는 책을 추천해주셨습니다. 모두 선생님이 올해에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라고 하니 여러분들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저희의 두서없는 이야기와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정치이야기를 하면서도 대화가 물 흐르듯이 막힘없이 흘러갔던 것은 선생님께서 그만큼 저희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기 때문인 것 같아요. 선생님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할 때도 선생님께서는 단 한 번도 “그건 아니야”라든지 “내 생각은 달라”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어요. 그저 다 들어주시고 동의해주시고 그러면서도 선생님의 뜻을 표현하셨어요.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이라는 어려운 어른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느낌보다는 친한 선배를 만나 실컷 수다를 떨다가 돌아온 기분이 들었어요. 자신의 색을 이미 충분히 구축하고 계시면서도 저희에게 자신의 색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저희가 저희의 색을 찾도록 배려하시는 모습에서 “인(仁)이라는 것은 자기가 서고자 하는 것에 다른 사람도 서게 하고 자기가 도달하고자 하는 것에 다른 사람도 도달하게 하는 것”이라는《논어》의 구절이 떠올랐어요.

 

 

 선생님과는 우선 선물 받은 책《현시창》(현실은 시궁창이다)’을 다 읽고 나면 다시 만나 뵙기로 했어요. 다시 만나 뵐 때는 지금보다는 조금은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뵐 수 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가져봅니다.

 

 

 고맙습니다. 김진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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