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귀와의 만남

제목'최초의 금속활자' 논쟁에서 시각을 조금 확대해서 보면 우리는 '최초'란 딱지보다 좀더 의미 있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 최용범,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中 2025-05-18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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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속활자를 세계 최초로 발명한 것은 우리 문화의 역사적 우수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최초의 금속활자' 논쟁에서 시각을 조금 확대해서 보면 우리는 '최초'란 딱지보다 좀더 의미 있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우선 구텐베르크가 무엇을 발명했는가에 관심을 가져보자. 그는 활판용 금속활자만이 아니라 인쇄기도 발명했다. 또한 인쇄에 가장 적합한 잉크도 개발했으며, 중국에서 유입돼 사용되던 종이의 질에도 관심을 두어 인쇄에 적절한 용지까지 찾아냈다. 마이클 H. 하트에 따르면 구텐베르크는 활자, 인쇄기, 잉크, 종이 등 인쇄출판에 필수적인 네 가지 요소에 대한 연구 끝에 대량 인쇄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었다고 한다. 그의 발명은 지식의 대량 보급을 가능케 해 서양의 역사를 전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에 반해 고려는 활자의 진정한 의미인 '지식의 대중적 보급'이라는 역할을 한 증거를 찾을 수가 없다. 미디어혁명을 가져오기에는 기술적, 사회적 토대가 미약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렵게 개발했을 금속활자는 단지 소수의 지식층이 보는 불경을 소량 인쇄하는 데만 쓰였을 뿐이다. 인쇄된 책조차 기관에 보관용으로만 방치될 따름이었다.

 '최초'란 딱지는 『기네스북』에 올리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진정한 가치는 발전의 단초가 될 때 빛나는 것이다. 최초의 금속활자는 발전의 단초가 되는 대신, 19세기말 서양식 인쇄기가 들어왔을 때 그 자취를 감춰야 했다.  - 최용범,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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